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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스야설) 젊음, 그 열기 속으로 - 8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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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으로 올라온 나의 눈엔 예전의 서울의 신촌이 보였다. 찌는듯한 더위는 전혀 의식하지 않는 듯한 사람들의 발걸음.

늦여름의 열기에 건물들은 저마다 힘겨워 보였지만 그 밑을 지나가는 사람들에게서는 그 모습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입대 전에 머물렀던 하숙집이 언뜻 보이기는 했지만 그렇게 정을 많이 둔 곳은 아니라 그랬는지 눈길이 오래 머물지는 않았다.


어디쯤일까.

미나의 부모님으로부터 대략적인 위치는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어느 건물인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었다.

눈을 돌려 두리번 거니는 내 눈길과 미정이의 눈길이 마주쳤다.

지하철에서의 그 아찔한 기억이 되살아나 무의식적으로 미정이의 눈길을 피하려 했다.

미정이의 눈길은 내 행동을 알고서 비난하는 듯이 보였지만, 그건 내 착각이었는지 오래지 않아 살포시 웃어주었다.

아마도 여고생이라서 아직은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에 자신이 괜한 오해를 했으리라 생각을 했을 것이다.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나직이 뱉어내고서 미정이의 눈길에 답해주었다.


잠깐 그렇게 제자리에 서 있다가 우리는 발길을 옮겼다.

기차에서 간단히 요기를 했고 또 지하철에서 사람들에게 치인 미나는

빨리 아파트에 가서 씻기를 원하는 듯했고 미정이도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그렇게 길을 따라 얼마간 걸어서 대로변에서 한 블록 정도 떨어진 곳의 자그마한 연립주택 같은 곳에 다다랐다.

아파트라고 그래서 전형적인 대단지 아파트라 생각했었지만,

생각과는 달리 그곳은 약 20세대 정도가 모여있는 조금 큰 연립주택 같아 보였다.


건물은 깨끗했고, 5층짜리 그 건물의 4층에 미나와 미정이의 보금자리가 있었다.

일단 나는 미나와 미정이의 짐을 들어다 주고서 집 내부를 둘러보았다.

방이 세 개였고 제법 널찍한 거실과 주방이 보였다.

두 자매가 서울에서 공부하는 곳이라고 보기보다는

이제 막 결혼한 신혼부부의 살림집처럼 보일 만큼 갖가지 세간살이가 잘 정돈되어 있었다.

미나는 오자마자 덥다고 연발하면서 욕실로 직행해 버렸다.

처음 오는 사람을 앞에 두고서 아무런 거리낌 없이 욕실로 사라져버리는 미나를 보면서

어이없어하고 있는데 미정이가 나에게 무언가를 내밀었다.


"덥죠 선생님?"


미정이는 생긋 웃으면서 나에게 손을 내밀었고 그 손안에는 어느새 얼음이 띄워져 있는 노란 액체가 찰랑거리고 있었다.


"응.... 고마워."


미정이는 내 대답에 얼굴을 약간 붉히면서 고개를 숙였다.

뭐라고 말하려는 것 같아서 미정이를 내려다보고 있었지만 미정이는 말을 입 밖에 내지는 않았다.

그렇게 약간 어색하게 서 있었지만, 그것도 잠시였는지 나에게 집 구경을 시켜주었다.

제일 큰 방안은 미나의 방이라 그랬고, 약간 작은방은 미정이의 방이었고, 나머지 방은 컴퓨터와 옷방이라고 그랬다.

미정이는 미나의 방은 나중에 미나가 나오면 들어가 보라고 말하면서 나를 자신의 방으로 안내했다.

문을 열고 들어간 나에게 향긋한 냄새가 느껴졌다.


미정이는 내 얼굴을 쳐다보면서 어떠냐는 표정으로 물었고, 내 입에서는 좋다는, 약간의 의례적인 대답이 나왔다.

미정이는 약간 실망한 듯 보였지만 곧 얼굴을 폈다.

그리고는 나를 방 안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잘 냉방 된 미정의 방은 약간 큰 침대가 창문 쪽으로 벽을 향해 자리 잡고 있었고 붙박이 책상과 책장이 놓여있었다.

그리고 여고생답게 자그마한 화장대가 오디오와 함께 다른 벽면 쪽으로 자리 잡고 있었고, 그 옆에 옷장이 놓여있었다.

미정은 자신의 침대에 앉으면서 나에게 그 옆에 앉으라는 듯이 나를 올려다보았다.


"야~~ 깨끗하네? 네 언니하고는 판이한데?"


미정의 옆에 앉으면서 나는 예전 미나의 방이 생각났고,

그런 미나의 방과는 판이한 미정의 방을 보면서 미정이에게 그렇게 말해주었다.


"헤...... 언니하고는 달라요, 저는........"


그렇게 말한 미정은 뭔가를 말하고 싶은 듯이 입을 벌리려다가 다시 다물었다.


"아까부터 뭘 물어보고 싶은데 그래? 궁금하면 언제든지 물어봐."


내가 먼저 말문을 트지 않으면 미정이는 계속 그렇게 주저하고만 있을 것 같았고,

이제부터라도 빨리 친해져야겠다는 생각에 나는 그렇게 미정에게 말했다.

그런 내 말에도 미정이는 한동안 내 얼굴과 바닥을 번갈아 보았고, 곧 주저주저하면서 내게 말문을 열었다.


"저... 선생님... 지하철에서....."


나는 당황했다. 미정이가 무엇을 말하는지 알고 있었고,

그래서 어떻게 변명할까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리면서도 이 녀석이 뭔가를 알면서 묻는 것인지 궁금하기도 했다.

미정은 내 얼굴을 보면서 자신이 할 말이 생각나서 부끄러워졌는지 얼굴을 붉혔고, 

그런 미정의 얼굴을 보고는 나는 피식거리고 웃었다.


하하하...... 요 녀석. 좀 놀려줄까?


미정이는 자신이 뱉어낸 말 때문에 당혹스러웠는지 얼굴을 숙이고 있었고, 

그런 미정을 모습을 보고 있자니 약간 심술궂은 생각이 떠올랐다.


"어... 지하철에서 언니하고 나하고 껴안고 있는 거 봤어?"


대뜸 그렇게 말하고서 나는 아무런 일도 아니라는 듯한 표정을 지으면서 미정을 물끄러미 쳐다보았고,

그런 내 눈길과 마주신 미정의 눈에서는 처음에는 놀람과 당황이 배어 나오는 듯했지만 얼마 안 가 섭섭해하는 표정이 떠올랐다.

미정이는 분명 남녀 사이의 일을 알고 있는 듯 해 보였고, 

그런 미정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과연 어느 정도까지 알고 있는 것인지 궁금해졌다.

또 내가 놀리는 말에 당황해하는 미정이가 귀엽게 보이기도 했고.


"왜? 언니하고 나하고 그러고 있으면 안 돼? 미정이는 싫어?"

"........."


나는 벙긋벙긋하면서 미정이를 계속 놀렸고, 미정이는 고개를 숙이고 바닥만 노려보고 있었다.


"그게 아니고요.."

"그게 아니고?"


힘겹게 입을 연 미정이는 그렇게 말하고선 다시 입을 닫았다가 내 눈을 한번 흘깃 쳐다보고는 말을 이었다.


"그때 저는 혼자였어요. 선생님이 내 쪽으로 와서 잡아줄 줄 알았었데…."


그렇게 말한 미정이는 시트를 꽉 잡고서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자기만 떼어놓고 미나와 나는 둘이서 꼭 붙어있었으니 섭섭했나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 미안하다 미정아. 그때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네게 갈 수가 없었어. 혼자서 힘들었었구나! 미안해"


그렇게 위로하면서 나는 미정이의 어깨를 오른손을 들어서 살짝 쥐었다.

내 손길에 흠칫 몸을 떤 미정이는 얼마 안 가 나지막한 소리를 냈다.


"음? 우는 거야? 왜 울어 울지마. 선생님이 잘못했다."


미정이의 눈에서는 맑은 액체가 방울져 바닥으로 떨어져 내리고 있었고,

나는 그만 당황해서 왜 미정이가 우는지 생각도 하지 않은 채 되는대로 미정이를 위로할 만한 말을 주절주절했다.


"..........."


어느새 미정이는 내 쪽으로 상체를 기울여 내 무릎 위에 머리를 얹고 있었고 나는 미정이의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있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 미정이는 곧 떨림을 멈추었고, 그런 미정이의 얼굴을 두 손으로 세웠다.

미정이는 부끄러워하면서 얼굴을 돌리려 했지만 나는 미정이가 그렇게 하도록 놔주지 않았다.

두 손위에 얹힌 미정이의 얼굴은 눈물 자국으로 얼룩져있었고, 그 얼굴을 보면서 나는 다시 말을 했다.


"아주 섭섭했구나? 미안하다. 다음부터는 그런 일 없을 거야."


이런 내 말에 미정이는 내 눈을 들여다보았고, 내 말이 진심이란 것을 알았는지 내 두 손위에 얼굴을 맡긴 채 조그맣게 입을 열었다.


"다음에 그런 일이 생길 땐 절 잡아주실 거죠?"

"그래그래. 꼭 그렇게 할게. 그러니까 이제 눈물 닦아."


미정이가 그렇게 말하는 것을 들은 나는 미정이가 이제 진정이 되었다는 생각에

미정이가 무슨 얘기를 하는지 제대로 생각도 못 한 채 미정이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미정이는 내 손바닥을 벗어나서는 자신의 두 손으로 볼을 부여잡았다. 그리고는 나를 바라보더니 살포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진짜죠 그 말?"

"그래그래. 알았어."


다시금 미정이는 귀엽고 발랄한 여고생으로 돌아와 있었고, 

그 빠른 변화에 어이가 없어지는 나는 피식 웃으면서 그렇게 대꾸해주었다.

그렇게 미정이와 내가 피식거리면서 웃고 있는데 벌컥 문이 열렸다.

미정과 나는 깜짝 놀라면서 문을 쳐다보았고, 그곳에는 미나가 배시시 웃으면서 우리 둘을 쳐다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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