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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스야설) 젊음, 그 열기 속으로 - 1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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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일어서서 사 온 것들을 하나하나 제자리에 갖다 놓기 시작했다.

냉장고를 채워 넣고, 가져온 옷가지들을 옷장에 정리하고.

어느 정도 물건들을 정리하고는 걸레가 없어서 집에서 가져온 수건 중에서 허름한 녀석을 골라서 방을 닦았다.

방이 꽤 컸기 때문에 닦기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방을 다 닦고서 걸레를 빨고 샤워를 해야 하겠는데, 욕실에 들어간 미나 녀석이 나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속으로 혀를 차면서 베란다로 가서 담배를 피워물었다.

담배 한 대를 다 피우고 나서도 미나는 나오지 않았다.

나도 땀을 꽤 흘려 찝찝했던 차라 화가 나기 시작했다.


"야! 뭐해? 아직 안 끝났어? 빨리 나와! 나도 샤워해야 되잖아."


하지만 욕실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그래서 손잡이를 돌려대니 미나의 다급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안돼, 안돼! 들어오지 마!"

"도대체 뭐 하는 거야? 온종일 있을 거야?"

"히잉~ 옷이 젖어버렸단 말이야…."

"뭐…?"


덥다고 머리를 홱홱 저으면서 들어가더니만 샤워하다가 물이 튀어서 벗어놓은 옷이 젖어버린 것이 틀림없었다.


`하여튼…. 덜렁대는 건 옛날이나 지금이나.`


"히잉~ 오빠아. 옷 좀 갖다줘…."


모기 소리만한 미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런 목소리는 미나에게서 듣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었기에 골려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 야, 임마! 여기 네 옷이 어딨어? 그냥 수건으로 대충 가리고 나와!"


난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느라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화난 듯이 말하려고 노력했다.

내 목소리에는 장난기가 그대로 묻어나왔지만 당황했는지 미나는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저 아무 말도 없이 문고리만 잡고 있는 게 눈에 선했다.


"하여튼. 덤벙대는 게 어디 가냐? 기다려! 집에 가서 미정이한테 옷 달라고 할 테니까!"

"안돼! 안돼! 가지 마!"


조금 전의 문 열지 말란 소리보다 더 큰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뭐야? 왜 안된다는 거지…?`


"그럼 어떡하냐? 미정이한테 안 가면 옷이 어디 하늘에서 떨어지기라도 하냐?"

"히잉~ 미정이한테 뭐라고 말할 건데? 내가 여기서 샤워하다가 옷이 젖어서 갈아입을 옷이 필요하다고 그럴 거야?

만약 미정이가 알아봐! 두고두고 날 가지고 놀려댈 거라고!"


`푸훗…. 그런 거야? 결국 미정이한테 놀림당하는 게 무서워서 그런다는 거잖아.`


"그럼, 어떡하냐?"

"히잉~ 오빠 옷이라도 갖다줘…."

"알았어 인마! 기다려!"


더 이상 놀려댔다간 울음이라도 터뜨릴 것만 같았기에 아쉬운 마음이었지만 놀리는 걸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내 옷 중에 미나가 입을만한 것이라곤 거의 없었다. 제대하고서 옷을 사지 않았으니.

입대 전에 입던 옷은 거의 다 버렸고 그나마 남아있던 거라고는 면티 몇 장 밖에 없었다.

그래서 옷장 속에 걸려있던 면티 중에 그나마 깨끗한 것 하나를 골라 들었고, 바지를 찾았지만 마땅한 것이 없었다.

허름한 운동복이 하나 있긴 했지만 미나가 입기에는 지나치게 클 것만 같았고.

한참을 뒤적거리고서야 결국 군용 반바지를 찾을 수 있었다. 그걸 가지고 욕실 앞으로 갔다.


"옷 가져왔으니까 문 열어."

"문 앞에다 놔둬…. 그리고 저리 가 있어…."

"알았다고 알았어."


옷가지를 욕실 문 앞에 내려놓고서 뒤로 두 발짝 물러서니,

그제야 문이 빼꼼히 열리면서 가느다랗고 하얀 팔이 나와서 옷을 찾아 더듬거리기 시작했다.

간신히 옷을 찾아서 집어 들더니 문이 도로 닫혔고 얼마간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는 좀 있다가 욕실 문이 열리고 쭈뼛거리면서 미나가 나왔다.

그런데 밖으로 나온 미나의 모습이란.


"푸훗! 푸하하핫! 아이고…. 하하하…."


걸치고 있는 면티는 목둘레가 커서 간신히 어깨에 걸쳐있었고,

길이 또한 길어서인지 허리께에서 질끈 묶여있었다.

그리고 군용 반바지 또한 몇 번을 접어 올렸는지 모르지만, 여전히 크게만 보였다.

다행히 허리를 묶는 끈이 있어서 흘러내리지는 않았지만.

 

그 옷가지들을 갖고서 나름대로 고민하고 고민해서 입었던 것이겠지만 어색한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그런 차림을 하고서 정신없이 웃어대는 날 미나가 째려보고 있었다.


"옷이 이런 것들밖에 없어? 응?"


나는 웃어대느라 정신이 없어 미나의 말을 제대로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화가 난 미나는 내 앞으로 다가와서 째려보았고.


"퍽!"

"윽…!"

"땀 냄새나니까 샤워나 하셔!"


그러고는 홱 돌아서서 주방 쪽으로 가버리는 것이었다.

미나에게 걷어차인 정강이를 문지르면서 눈물을 찔끔거려야 했지만 웃음을 멈출 수는 없었다.

그렇게 웃으면서 나는 수건이며 면도기며, 여러 가지를 챙겨 들고서 욕실로 갔고, 선반에 물건들을 넣어두었다.

미나의 태도에 계속 웃음이 나왔고, 또 전신을 타고 흐르는 찬물이 더없이 시원했기에 무척 기분이 좋았다.


`저 녀석, 덩치는 어른인데 하는 짓은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아…. 후후후….`


물론 때때로 미나에게서 흘러나오는 묘한 분위기 때문에 당황하기도 했고,

지하철에서의 일도 있었지만, 그때는 그런 생각보다는 미나의 당황한 모습만이 생각났다.

그렇게 기분 좋게 샤워하고서 옷을 갈아입고 나오니 미나가 소파에 앉아서 나를 째려보고 있었다.

볼이 잔뜩 부은 채 나를 쳐다보는 눈길이 심상치 않았다.


"화 났냐?"


아무 대답이 없었다. 한 번 화가 나면 몇 일간 냉랭해지는 건 예사였기에 어떻게 하든 지금 풀어야 했다.

하지만 나로서도 그렇게 살갑게 대해주는 건 자신 없었기에 머쓱하기만 했다.

일단 아무 말이라도 해서 미나의 기분을 돌려놓아야 했지만 잘 생각나지 않았다.

마침 그때 테이블 위에는 커피가 모락모락 김을 올리고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에구…. 그래도 커피를 끓였네?"


커피잔을 들어 올리면서 기특하다고 생각했지만, 미나의 손에 들려진 콜라를 보고는 심통이 났다.


이것 참…. 자기는 시원한 콜라 마시면서 나 보고는 뜨거운 커피를 마시라는 거야?

심통을 이렇게도 부리는군. 근데, 지금 한 소리하면 또 때리겠지?

어쨌든 그때는 미나를 달래는 게 우선이었기에 능청을 떨어야만 했다.


"흐음…. 향기 좋은데? 역시 미나가 끓이니까 뭐가 달라도 다르군!"

"흥! 인스턴트커피가 거기서 거기지, 다르기는 뭐가 달라! 아부하기는…."

"하하…. 근데 미나는 뭘 입어도 이쁘기만 하네? 역시 옷걸이가 좋아야 해."

"흥! 그래도 보는 눈은 있어가지구…."


그제야 미나의 표정이 살포시 풀리는 듯 했다. 역시 아직은 어리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학 2학년을 어리다고 하기에는 조금 뭐 했지만 그때는 그렇게 느껴졌다.


"근데, 옷이 이런 것밖에 없어? 티는 목이 늘어나 차도 지나다니겠고, 이 바지는 또 뭐야?"

"하하, 옷을 안 샀으니 그런 거라도 있는 게 어디냐? 이제부터 하나씩 사야지, 뭐."

"또 이런 것들 살 거야?"

"이게 어때서?"

"그럼 그렇지. 옷 고르는 데는 소질 있다니까! 이게 옷이야? 천 쪼가리지! 앞으로 옷 살 땐 나랑 같이 가는 거야, 알았지?"

"예, 예! 알겠습니다."


혀까지 차면서 흘겨보는 미나에게 머리까지 조아리면서 맞장구를 쳐주었다. 겨우겨우 화를 풀었다고 안도하면서.

하지만 계속 이대로 앉아있을 수는 없었다.

청소는 대강 끝냈지만, 빨래가 남아있었고, 책상은 여전히 손도 대지 못한 채였기 때문이었다.

욕실로 가서 새로 들여놓은 세탁기 사용법을 알아내려고 매뉴얼을 들고 끙끙거리다가 겨우겨우 세탁기를 돌렸고,

책상 정리를 하기 시작했다.

흘끗 돌아보니 미나는 소파에 양반다리를 한 채 과자봉지와 콜라를 들고서 TV를 보면서 깔깔거리고 있었다.

그 모습이 귀엽게 보이기도 했지만, 훤히 드러나는 다리에 시선이 가는 것도 어쩔 수 없었다.

애써서 시선을 돌려 책상으로 향했다.


책이라고 해봐야 몇 권 되지 않았다.

겨우 1학년을 마치고 입대했기에 전공 서적이라고 할 만한 것이 있을 리 만무했고,

기껏 가져온 책들도 개정판에 밀려 쓸모없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텅 빈 책장과 책상을 비워둘 수는 없었기에 몇 권을 올려놓고서 일어섰다.


다시 소파로 돌아왔을 땐, 미나는 어느새 잠들어 있었고 TV는 혼자 떠들고 있었다.

미나의 배 위에는 과자봉지가 주인의 손길을 벗어나 놓여있었고,

소파의 등받이에 있어야 할 미나의 머리는 제자리를 잃은 채 흘러내려 있었다.

모로 누운 미나의 입술이 살짝 벌어져 있었고, 그 사이로 쌕쌕거리는 숨결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머리카락 몇 가닥이 흘러내려 미나의 콧잔등과 입술을 덮고 있었다.

제대로 말리지도 못한 채 잠든 때문인지 엉망으로 헝클어져 있었지만, 오히려 그런 미나의 모습이 귀엽게만 보였다.

미나의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겨주자 미나의 몸이 가볍게 꿈틀거렸지만 이내 잠잠해졌다.


`후훗…. 그렇게 떠들어대고 뛰어다녔으니 피곤하기도 했겠지.`


그런 생각을 하면서 미나의 잠든 얼굴을 물끄러미 내려다보고 있었지만, 곧 세탁기 소리가 났다.

미나의 배 위에 올려진 과자봉지와 테이블 위의 콜라잔을 치우고 세탁기에 넣었던 빨래를 꺼내어 들고는 베란다로 갔다.

빨래를 널려고 건조대를 찾았지만, 이미 그곳에는 몇 가지의 옷들이 널려있었다.


진수는 건조대에 널려있는 미나의 옷가지에 시선이 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곳에는 진수의 상상을 뛰어넘는 옷가지들이 널려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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