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야설

(학창물야설) 그의 대학생활 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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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의 문턱에서….


한 차례의 길었던 비가 내리고 나자 늦여름의 더웠던 날씨는 어느덧 사라져 가고 있었다. 

철하는 요즘 효린이 때문에 행복했지만 이슬이 때문에 힘들기도 하였다. 

이슬이는 그날 집에 그렇게 간 이후로 학교에 잘 나오기는 했다. 

그러나 전보다 더 철하와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그런 이슬이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철하는 가슴속에 작게 자리 잡고 있던 미안한 감정이 조금씩 커져 감을 느꼈다. 

이슬이가 자신을 좋아하던 것을 몰랐던 것은 아니었다. 

자신도 이슬이가 점점 좋아지려 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슬이는 적당한 선에서 더 이상 적극적으로 넘어오지 않았다. 

소극적이고 여자한번 사귀어보지 못한 철하로서 여자에게 먼저 다가가고 말을 한다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런 철하에게 두 달이 넘는 여름방학 기간 동안 효린이 접근했으니 철하가 안 넘어 갈 리가 없었다.


그러나 일은 다른 곳에서 터지고 말았다.


조금씩 날씨가 시원해짐에 따라 사람들의 옷차림도 조금씩 길어져 갔다. 

철하도 얼마 전에 가을 옷을 몇 벌 구입해서 입고 다니는 중이었다. 

철하는 요즘에 학교 가는 것이 조금 힘들었다. 

이슬이를 편하게 대하기가 힘들었기 때문이다. 

자신은 편하게 대해도 이슬이가 편하게 받아주지 않는다.


그날도 답답한 마음을 가지고 강의실로 들어섰다. 

이슬이는 항상 그렇듯이 맨 뒷자리에 앉아있었다. 

항상 일찍 오던 진원이와 지희의 모습은 왠일인지 보이질 않았다. 

철하는 이슬이의 눈치를 보면서 슬금슬금 다가가 옆자리에 살짝 앉으며 인사했다.


“안녕….”

“응. 안녕.”


이슬이는 자신의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면서 인사했다. 

그녀는 눈썹을 살짝 찡그리고는 무언가를 고민하는 눈치였다. 철하는 조심스레 다시 입을 열었다.


“진원이와 지희는 안왔어?”

“…둘 다 연락이 안되네.”

“뭐?”


이슬이의 조용한 말에 철하는 깜짝 놀라 물었다. 하지만 이슬이는 그냥 가만히 핸드폰을 바라보고 있었다.

결국 그날 모든 강의가 끝날 때까지 진원과 지희의 모습은 보이질 않았다. 

철하도 걱정이 되어 몇 번씩이나 전화를 했지만 둘 다 받질 않았다. 

이슬이도 꽤나 걱정을 하는 눈치였다.


다음날도 진원이와 지희의 모습은 보이질 않았고 연락도 되지 않았다. 

그리고 철하는 한 가지 사실을 더 알 수 있었다. 

소현과 같이 듣는 강의에 들어갔을 때 소현도 나오질 않았다는 것이다. 

굳이 소현에게 연락을 해보지는 않았지만 철하는 소현도 이 일에 연관되어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였다.

강의가 모두 끝나고 가방을 챙기는 철하에게 이슬이가 입을 열었다. 

요즘에 이슬이가 먼저 말을 건 일은 처음이라 조금 놀란 철하였다.


“과학생회에다가 진원이랑 지희, 집주소랑 집전화번호 알려달라고 하자.”

“어, 어. 그래….”


그러나 둘이 막 강의실을 나가려는 순간 이슬이의 핸드폰이 울렸다. 

이슬이가 핸드폰을 보더니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


“지희다! 여보세요?”


철하는 요즘 들어 이슬이의 조용하고 차가운 목소리만 듣다가 오랜만에 활기찬 목소리를 듣는다고 생각하자 미안한 마음이 더 커졌다.

그러나 철하의 생각과는 상관없이 이슬이는 계속해서 전화통화를 하고 있었다.


“뭐? 그래…. 알았어.”


이슬이는 지희와 무언가 이야기를 하더니 전화를 끊고는 철하에게 말했다.


“종로에서 만나재.”

“종로? 무슨 일이래?”


철하가 되물었으나 이슬이는 모른다는 듯 고개를 가로 젓고는 돌아서 걷기 시작했다. 

철하도 이슬이의 뒤를 따라 갈 수 밖에 없었다.


*


철하는 버스를 타고 종로로 가는 내내 이슬이와 단 둘이 가는 것이 어색해서 미칠 것만 같았다. 

이슬이와 친하게 지내기 시작했을 때만 해도 그녀와 이런 어색한 분위기 속에 있는 상황을 꿈에라도 생각했을까. 

그리고 이렇게 변해버린 상황이 다 자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점점 머릿속에 자리잡아갔다. 

철하는 옆에 서서 가고 있는 이슬이를 힐끔 쳐다보았다. 

 무표정하게 창밖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후우….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이슬이의 속마음을 전혀 알 길이 없는 철하였다.


종로에 도착하자 이슬이는 지희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는 이내 지희와 만날 수 있었다. 

지희는 패스트푸드점 앞에 다소곳이 서서 철하와 이슬이를 기다리고 있었다. 

둘을 본 지희가 살짝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안녕…?”

“야!”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인사를 건네는 지희를 보자 이슬이가 화가 났는지 소리를 질렀다.


“안녕은 무슨 안녕이야! 사람 걱정 시켜놓고….”

“미안해…. 일이 좀 있어서….”


이슬이의 말에 지희는 미안한 듯 고개를 숙였다. 

그런 지희에게서 풍겨오는 무거운 분위기는 이슬이로 하여금 더 이상 화를 낼 수 없게 만들었다. 

철하도 그저 조용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지희는 평소 쓰지 않던 모자를 쓰고 있었다. 

야구모자를 푹 눌러 썼는데, 그 아래로 보이는 얼굴이 조금 초췌해 보였다. 

평소 진하게는 아니더라도 옅은 화장을 하던 지희였는데 오늘은 화장조차 하지 않은 맨 얼굴이었다. 

하지만 워낙 피부가 깨끗한 지희라 화장을 안 한 맨 얼굴이 오히려 남자의 보호본능을 더욱 자극하는 얼굴이었다.


지희는 술을 마시러 가자면서 앞장서서 걷기 시작했다. 

이슬이와 철하는 지희의 분위기에 눌려 그저 조용히 뒤따라 갈 수밖에 없었다.

지희는 술집에 들어가 소주와 안주를 시키더니 소주가 나오자마자 한잔을 마셨다. 

그리고는 연거푸 두 잔을 더 따라 안주도 없이 마셨다. 

철하와 이슬이는 그런 지희의 모습을 보고 놀라며 말렸다.


“야! 너 왜 그래? 무슨 일인데? 말해봐.”


이슬이의 말에 지희는 세 번째 잔을 내려놓더니, 소주가 굉장히 쓴 듯 얼굴을 찡그리며 입을 열었다.


“하하…. 엽기적인 그녀의 전지현처럼 해보려 했는데 어렵네….”


지희는 자신의 말에 황당해하는 이슬이와 철하는 쳐다보지도 않고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더니 천천히 말을 이어갔다.


“…아무래도 진원이가 소현선배와 잔 것 같아….”

“뭐?”


철하와 이슬이가 놀라며 동시에 소리쳤다. 

지희의 말에 의하면 그제 열두시가 넘은 늦은 밤에 전화를 걸었는데 받지 않길래 한 번 더 전화했더니 소현이 받았다고 한다. 

깜짝 놀란 지희는 소현에게 진원이는 어디가고 왜 선배가 받냐고 하자 소현이 말하길 진원이는 지금 씻고 있단다. 

너무 놀란 지희는 소리를 지르며 끊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후 진원이에게 여러 차례 연락이 왔지만 지금까지 받지 않고 있었단다.


철하와 이슬이는 지희의 말을 듣고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소현이 관련 있을 줄은 알았지만 설마 이런 일이 벌어질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기 때문이다. 

철하는 얼마 전부터 소현이 진원에게 지나친 스킨쉽을 하던 일을 떠올렸다. 그리고 소현의 집에서 나눴던 자신의 첫 섹스도 떠올랐다. 

그리고 그 모습위에 소현이 진원과 섹스를 나누는 모습이 오버랩되어 나타났다.


‘아….’


철하는 지희를 바라보며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어느새 지희의 맑은 눈에는 눈물이 방울방울 지며 떨어지고 있었다. 

이슬이를 바라보니 이슬이도 놀란 듯 아무 말도 안하고 있었다.


지희는 계속해서 술을 마셨다. 

이슬이는 아닐 거라고 진원이에게 다시 연락을 해보라며 계속해서 지희를 설득했지만, 지희는 듣지 않고 계속해서 술을 마셨다. 

이슬이는 철하를 째려보며 너도 무언가를 말하라고 무언의 협박을 하였지만 철하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여자를 위로하는 일은 하지도 못할 뿐 더러 소현이 자신에게 했던 일을 떠올리면 정말로 진원이와 섹스를 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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