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야설

숙의 하루 -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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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술자리, 접대, 성희롱 ①


숙에게 있어서 그날 하루는 분명 치욕적인 날이었다. 출근길 지하철에서 겪은 당혹한 사건이야 자기 혼자만의 수치심이었다고 해도, 학생들과 교무

실에서 공개적으로 당해버린 거울 사건은 그녀를 사람들 앞에서 발가벗긴 만큼이나 부끄럽게 만들었다. 도망이라도 치고 싶었다.


그래서, 그녀는 그날 오후의 시간을 내내 3층의 음악실에서 버텼다. 물론 수업이 연달아 있었지만, 계속 악보만 베껴 그리게 하거나 미니 오디오로 클래식 감상만 시켰다. 잠시 의자에 앉을 때도 꼭 한 손으로 플레어스커트 자락을 단단히 보듬어 쥐었다. 당연히 허벅지 사이는 손가락 하나 들어갈 틈이 없이 단단히 무릎을 붙인 채로….


이 또래의 남학생들은 여자아이들만큼이나 재잘거리기 마련이다. 이미 여선생 치마 속 팬티 훔쳐보기 사건은 전교생의 화제가 됐을지도 모를 일이다.


숙은 도저히 학생들을 바라볼 엄두도 내지 못했다. 혹시 시선을 돌리다 아무 학생이든 시선과 마주치게 되면 그 녀석은 마치, "난 다 알아. 당신 오늘 밴드 스타킹에 검은색 레이스 팬티지?"라고 하는 것 같았다.


그것은 꼭 그녀가 마치 하반신에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채 학생들 앞에 서 있는 것만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숙은 수업 시간 내내 그런 모욕감에 시달릴 수밖에 없었다.


자꾸 다른 쪽으로 생각을 바꾸려 해도, 하루에 두 번이나 벌어진 사건은 창가를 바라보는 그녀를 우울하게 만들었다.


"그 애들은 무얼 봤을까? 그 애들은 무슨 생각으로 내 속살을 보려고 했을까? 그 녀석들은 나를…. 선생님인 나를 섹스 상대로 상상하는 것일까?"


이런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자, 숙은 몸을 떨며 눈을 질끈 감았다. 하복부에 놓인 채 맞잡은 손 마디가 저리도록 꼭 쥐어지며 아랫배를 눌렀다.


뭔가? 아침, 지하철역 안에서 느꼈던 느낌, 몸속 깊은 곳에서 꿈틀거리던 그 야릇한 느낌이 그녀의 몸 전체를 달궈왔다. 


"안돼! 안돼!" 


그녀가 고개를 흔들며 마치, 뭔가를 털어내려고 애를 쓸 즈음에 요란하게 벨이 울렸다. 오늘 그녀의 마지막 수업 끝을 알리는….


종례를 위해 교무실로 내려왔어도 숙은 음악실과 같은 분위기에 휩싸여 버렸다. 남자 선생들이야 이미 한 선생의 입을 통하여 사건을 들었는지, 그

녀에게서 얼굴을 돌리며 킥킥대고 있었다. 그리고 애당초 그녀에게 호의적이지 못했던 중년 여선생들은 왠지 코가 높아진 듯, 멸시의 눈초리로 그녀를 대하고 있었다.


"어쩐지 하늘거리며 입고 다니더라."


"먼저 꼬리 쳤나 보지 뭐."


급기야는 고개를 수그린 채 교무실 한쪽의 임시 교사 석을 향해 책상 사이를 가로지르는 그녀 귀가에 이런 소리마저 들렸다.


숙은 앞쪽에서 얘기하는 교감 선생의 종례 훈시도 귀에 들리지 않았다. 종례가 끝난 듯, 동료 강사 선생들이 우르르 의자를 빼자, 그제야 간신히 정신이 돌아왔다. 


"음악 선생님. 음악 선생님도 이리 와서 앉아봐요."


한 선생이었다. 그는 교무실 구석의 회의용 테이블 앞에 앉아 그녀를 부르고 있었다. 영문을 모르며, 혹시 아까 그 사건 이야기를 하려는 건 아닐까, 의아해하던 그녀는 한 선생의 호출을 받은 몇몇이 함께 자리에 앉는 것을 보고서 안도했다.


"선생님들, 오늘도 수고들 하셨는데 말이죠."


그는 뜸을 들이고 있었다. 한 선생은 그들 외의 다른 선생들이 모두 퇴근하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주변의 눈치를 보며 말문을 꺼냈다.


"에…. 지금 선생님들을 부른 것은…."


그의 눈치가 매우 조심하는 거 같았다.


"오늘 우리끼리 회식 한번 할까 하는데 다른 선약들 있으신가요?"


숙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이 서로 얼굴을 쳐다보았다. 반대가 없자, 한 선생이 말을 이었다.


"흠…. 다행히 모두 시간은 되시는 모양인데…. 왜, 다음 주에 교육관님 방문이 예정되어 있잖습니까."


난데없이 웬 교육관 이야기? 알고는 있었으나 시범 학습 학급 외에는 별다른 긴장을 하고 있지 않던 그녀들은 다시 한번 영문을 몰라 서로의 얼굴만 멀뚱하게 처다보았다.


"그래요. 그게 원래 다음 주지요. 하지만 오늘 저녁에 교육관님이 비공식 방문을 하시거든요. 그래서…."


비공식 방문? 처음 들어보는 이야기였다.


"아시다시피 그분 방문 목적이 내년도에 있을 전산화 시범학교 선정에 있는 것 아닙니까. 해서 이번에 교장 선생님의 특별 요청으로 교육관님이 오늘 오시는 거거든요."


숙은 그제야 감을 잡았다. 시범학교, 그것도 전산화라면 몇천만 원의 지원 예산이 걸린 사안일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 회식은 접대 자리? 숙은 재빨리 주변을 둘러보았다. 


주임인 한 선생을 제외한 모습은 그녀의 예상과 맞아떨어지고 있었다. 모두가 여선생들이었다. 그리고 자기를 포함한 전부가 교무실 내에서 싱싱하게 물오른 축에 속하는 임시교사, 즉 강사들이었던 것이었다. 나이 어리고 젊은 여선생들….


임시 미술 교사 은 선생, 크지 않은 키지만 몸매는 이 학교 안에서 제일 늘씬하고 어려 보이는 얼굴이 빵빵한 몸매와 야릇한 조화를 이루는….


희, 과학 강사. 아직 일 년 차이기는 했지만, 풍만한 글래머에 뽀얀 피부로 부러움을 받으며, 웃을 때마다 눈꼬리가 감춰져 나이에 비해 묘한 색기가 발산하는….


숙, 탱탱한 몸매에 그런대로 예쁜 얼굴, 쉽게 얘기해서 오늘 '접대용' 여선생들로 뽑힐만한 것이 그녀들이었다.


한 선생의 얘기가 계속됐다.


"그래서 말이야. 우리 쪽에서 뭔가 성의를 보여야 하는 것 아니겠어요?"


숙은 갑자기 기분이 나빠졌다. 어쨌든 그녀 역시 여자였기에, 인물 좋은 여선생들 중의 하나로 뽑혔다는 것이 싫지는 않았지만, 오늘 같은 기분에 편한 술자리도 아니고….


"그렇다고 말이지, 비공식적인 회식이라 아무 곳이나 막 들어갈 수는 없고 말이에요…. 또 그쪽분이 워낙 그렇고 그런 분위기는 싫어하셔서…."


여자를 사서 대접하는 대신 그녀들을 수고시키겠다는 터였다.


숙의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다른 날이면 몰라도 오늘처럼 당혹한 날에는 도저히….


"다 훌륭하시고 존경받는 분들이니 협조 좀 부탁드리겠어요."


숙은 아무래도 이런 자리를 피하고 싶었다. 그녀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하려는데, 한 선생의 음흉한 목소리가 그녀의 귀속을 파고 들어

다.


"다음 학기에 정교사 발령이 있을 텐데…."순간 좌중이 모두 조용해지며 싸늘한 긴장감이 돌았다.


그렇다. 그들은 아직 모두 임시직이다.


"아, 오늘 같은 날, 교장 선생님도 계신 자린데…. 여러분들이 고생하시는 거, 그분이 몰라라 하시겠어요? 따지고 보면 다 여기 선생님들이 정교사로 발령받으실 이 학교를 위한 거 아닙니까?"


숙 역시 한 선생의 이 마지막 한마디에 다시 엉덩이를 주저앉히고 말았다. 


"그럼, 이의들 없으신 줄 알고…. 모두 일어나 교장실로 가시죠. 기다리고 계실 텐데…."


어쩔 수 없었다. 이 사립 중학교의 전권을 쥐고 있는 교장선생…. 처음과 달리 모두 결연한 의지마저 보이며 입술을 깨물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교장실로 가면서도, 한 선생은 잠시 딱딱해진 분위기를 반전시켜 보려는 듯 계속 주섬거렸다.


"선생님들, 이제부터 고과점수만 남았어요. 그냥 재밌게 놀고 많이들 드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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