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야설

오빠의 노예 -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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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결혼식장에서 만났어요. 난 신부 측, 언니는 신랑 측 우인이었죠. 언니가 날 먼저 알아보고 차나 한잔하자고 하더군요. 그래서 알았어요. 오빠가 얼마나 여자한테 무심한지.”


“틀렸어. 난 무심하지 않아. 잊었나 본데. 난 여자를 버리지도 않아. 항상 버림받은 쪽은 내 쪽이었지.”


“알아요. 이별 선언에도 항상 우아하게 끝을 내줬다고 하더군요. 무심하지 않았다는 쪽에는 글쎄요. 정말 여자가 원하는 게 뭔지 몰랐나요? 침대 매너만 좋다고 그게 다라고 생각할 정도면 무심한 거 맞아요.”


침대 매너라고 말할 때는 속이 뒤틀렸다. 


태욱의 전 여친으로부터 그가 자신을 이용하는지를 알면서도 3년이나 못 헤어졌던 건 속궁합 때문이라고 했을 때 그 자리에서 박차고 나오고 싶었다. 

유진은 아무것도 몰랐다. 그저 전 남친의 여동생한테 하소연한 것뿐이었다. 

영아는 아무렇지 않은 척 듣는 게 오장육부를 갈가리 찢기는 듯 영혼이 뒤틀려서 1분이, 1초가 고문 같았다.


“연애를 했다면 그랬겠지.”


“뭐라고요?”


“서유진은 물론이고 그전에도 처음부터 분명히 말했어. 연애 아니라고, 그건 기대하지 말자고. 서로 가려운 곳 긁어 주는 스트레스 해소용으로 만나자고. 다 동의하고 만났던 거고. 자, 내가 뭘 잘못한 건지 말해 줄래?”


가려운 곳 긁어 주는 스트레스 해소용이라는 말이 비수처럼 그녀를 찔렀다. 그녀 또한 다를 바 없을 것 같으니까.


아니, 난 달라. 지금부터 그걸 따지는 거야.


“난 동의하지 않았어요. 나한테는 분명히 말하지 않았잖아요. 연애 아니라고, 기대하지 말자고. 서로 가려운 곳 긁어 주는 스트레스 해소용으로 만나자는 말, 전혀 못 들었어요. 내 기억력에 문제 있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그녀는 저도 모르게 울먹이고 있었다. 어린아이처럼 눈가를 북북 문지르며 흐려진 시야를 닦았다. 그녀를 물끄러미 내려다보는 그의 목젖이 크게 출렁거렸다.


“아니.”


“그럼 난 오빠한테 뭔데요?”


진작 묻고 싶은 질문이었다. 그런데 무슨 대답이 나올지 두려워서 한 번도 묻지 못했다.


“넌 내가 원하는 여자야.”


충분치 않았다. 애매하게 말하지 말자면서 정작 답답하게 구는 건 그였다.


“지금은 그렇겠죠. 하지만 오빠가 원했던 여자는 내가 유일했던 건 아니잖아요. 나 이전에도 있었고, 그 이후에도 있었겠죠.”


지난 1년 동안 정말 괴로웠던 게 그가 다른 여자와 뒤얽히는 상념이었다. 


마태욱의 빼어난 용모와 섹시한 뇌, 그리고 부와 지위. 모든 것을 갖춘 그를 원하는 여자는 많았고, 그가 손만 뻗으면 바로 구할 수 있는 것이 섹스 파트너였다. 


그는 절대 하룻밤 관계를 하지 않았다. 그는 아무리 섹스 파트너라고 해도 자신과 배경이 비슷한 여자를 원했다. 

굳이 따지자면 그의 연인 중 가장 뒤처지는 배경이 그녀였다. 

하지만 그녀가 가진 강점은 순종적이고 원하면 언제든지 가질 수 있는 관계였다. 아무 구속 없이 편하게 그를 떠받들어 주는 충직한 노예 말이다.


“없었어.”


“뭐라고요?”


“너 이후에는 없었어. 지난 1년 동안 다른 여자는 없었다고.”


그녀는 믿을 수 없어 고개를 저었다. 그가 그녀의 머리를 단단히 잡고 다시 말을 이었다.


“난 널 안은 후부터 다른 여자를 안을 수 없었어. 다르다는 걸 아니까. 알아 버렸으니까.”


그의 어두운 눈길이 그녀를 사로잡았다. 태욱은 거짓말을 하는 것이 아니었다. 


사실 그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언제나 진실했다. 

그 진실이 잔인하고 냉혹하다고 해도 거짓으로 현혹시키지 않았다. 그건 그의 스타일이 아니었다.


“뭐가 다른데요?”


그녀가 고집스럽게 물었다. 그에게 알고 싶은 게 너무 많았다.


“알잖아. 너도 이제 알았을 테니까. 안 그래?”


자신만만한 어조와는 달리 그의 입술이 미세하게 떨렸다. 


그를 오랫동안 봐왔기에 감지할 수 있었다. 

그는 싫은 것이다. 그녀와 다른 남자와 얽혔다는 사실이 몸서리치도록 신경 쓰이는 것이다. 

그녀가 그랬던 것처럼. 물론 그랬다고 공평한 건 아니었다. 그녀의 고통은 그의 싸늘한 분노보다 훨씬 깊고 큰 아픔이었으니까.


“글쎄요. 내가 알았던 남자는 오빠 말고는 단 한 사람뿐이니까.”


그가 영아의 어깨를 꽉 누르자 그 통증에 악, 소리가 날 것 같았지만 그녀는 참았다.


“언제가 마지막이었어? 설마 네가 임신한다면 유전자 검사가 필요한 시기까지…….”


“그날 밤뿐이었어요. 위안이 안 된다는 걸 아니까, 굳이 다시 시도할 필요가 없었어요.”


하지만 그는 안도하지 않았다. 여전히 인상은 쓴 채로 그녀를 내려다볼 뿐이었다.


“그럼 결혼 이야기는 또 뭐고 오늘은 왜 같이 있었어? 방금 나간 녀석 맞지?”


“오빠가 찾아오면 혼자 상대할 자신이 없었어요. 그 사람은 날 많이 걱정하거든요. 나도 그 사람이 걱정되고요. 그래서 결혼한다는 소문이라도 내서 방어벽을 치고 싶었어요.”


그의 섹시한 입술까지 뒤틀리는 걸 보니 그 역시 마음에 안 드는 모양이었다. 그것도 아주 말이다.


“안 되는 거 알지?”


“뭐가요?”


“넌 날 원해. 그런데 위안을 얻었던 남자를 곁에 두겠다고? 내가 그 꼴을 볼 수 있을 것 같아?”


그의 험악한 기세에 그녀는 사악한 만족감을 느꼈다. 그가 질투한다고 생각하니 흥분까지 되는 거였다. 

물론 단순히 육체적인 소유욕이겠지만 이 정도라도 감정을 보이는 건 좋은 징조였다.


“알겠어요. 조심할게요.”


“짐 싸. 올라가자.”


“뭐라고요?”


태욱이 갑자기 일어나서 옷장 문을 열자 그녀도 침대에서 내려서서 앞을 가로막았다.


“지금 방학이니 나와 같이 지내. 바쁜 일 처리하고 난 후, 다음 주쯤 내가 휴가를 내면 사이판 별장으로 떠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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