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야설

욕망의 포효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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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생각 없는데요.”


“뭐?”


“소진선 씨가 꾸민 일이잖아요.”


“뭐라고요?”


“효준 씨하고 내 관계 아는 사람 청음에는 없어요. 느닷없이 비서가 되어서 당황했지만, 처음에는 아무 반응도 없었던 직원들이고요. 

그런데 갑자기 제 얘기를 한다는 것이 이상하잖아요. 제가 하고 싶은 일은 비서가 아니라 셰프이며 푸드스타일리스트예요. 

직원들은 그것도 잘 알고 있어요. 비서로 발령 났을 때 전부 절 위로해주던 분들이었어요. 

그런데 갑자기 절 꽃뱀 취급하면서 이상한 사람 만드는 것이 이상하잖아요. 그런 참에 소진선 씨가 만나자고 연락을 해왔고요. 그러니 누구 짓인지 뻔한 거 아니에요?”


“그래요? 눈치가 아주 없는 것 같진 않네. 난 효준 씨하고 재결합할 거예요. 그러니까 효준 씨한테서 떨어지라고.”


“효준 씨는 그럴 생각이 없는 것 같던데요.”


“당신이 뭘 알아?”


“우리 밤도 같이 보냈어요. 뭘 더 알아야 하죠?”


“뭐, 뭐라고?”


진선이 당황해하자 희수는 커피를 마셨다. 효준을 빼앗은 진선을 아프게 하고 싶었다. 

얼마나 고통 받고 괴로웠던가. 무슨 짓을 했는지 모르고 당당하게 고개를 쳐들고 있는 그녀를 나락으로 떨어뜨리고 싶었다.


“효준 씨 말로는 이혼한 이유가 소진선 씨에게 있다고 하던데. 그런 치명적인 이유가 존재하는데 효준 씨와 재결합하려고 해요? 

정말 뻔뻔하네요. 나 같으면 얼굴을 못 들고 다닐 것 같은데요. 얼마나 뻔뻔하면 그럴 수 있어요?”


“다, 당신 지금 뭐, 뭐라고 하는…….”


“재력 있고, 조건 좋은 당신이라면 효준 씨 마음을 돌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당신이 뭐가 잘나서? 운 좋게 부자 아버지한테 태어난 거 말고 뭐가 대단해요? 이혼했으면 그만이지, 왜 꼴사납게 매달려요? 정신 차리세요.”


희수는 전에 효준과 장인이 나누던 말을 추리 삼아 끼워 맞춰 말했다. 

그런데 새파랗게 질린 진선을 보니 이혼 이유가 소진선에게 있는 것이 맞는 것 같았다. 

자신을 버리고 갔으면 잘 살기라도 할 것이지, 잘 살지도 못하고 이혼남이 되려고 그렇게 자신을 아프게 했나 하는 생각에 마음이 쓰렸다.


“다시는 연락하지 마세요.”


희수는 단호하게 말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커피전문점을 나왔다. 씁쓸함을 금할 수가 없었다. 

도대체 어떤 이유로 이혼했는지도 알고 싶었다. 희수는 효준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야.]


“어디에요?”


[청음.]


“저녁 같이할래요?”


[진심이야?]


“네. 집으로 와요.”


[몇 시까지?]


“7시까지 와요.”


[알았어.]


전화를 끊은 희수는 한숨을 내쉬며 하늘을 올려다봤다. 


그 어떤 것도 정리가 되지 않은 상태인지라 혼란스러웠다. 괜히 소진선의 마음을 아프게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어쨌든 효준의 아내였던 여자가 아닌가. 뺏은 사람도 잘못이지만, 빼앗긴 사람도 바보가 아니겠는가. 똑같은 사람 된 것 같아서 살짝 후회가 들었다.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는 발걸음이 너무 무거워서 그 자리에 주저앉을 것만 같았다.


얼마 만에 본 효준인가. 미움과 증오심으로 그를 밀어냈지만, 그리워했던 사람이었다. 

행복하길 빈 적은 없지만, 불행하길 바란 적도 없었다. 그런 그가 돌아왔다. 

이젠 그를 똑바로 응시해도 되는 걸까? 그의 두 눈을 봐도 되는 것인지 의구심이 들었다.


***


“어서 와.”


희수는 도착한 효준을 보고 미소를 지었다. 그녀의 미소에 효준은 어리둥절했다. 

무슨 말을 하려고 부르는 건지 긴장한 상태였다. 좋은 말이 나올 리가 없을 테니 말이다. 또 한바탕 싸워야 하는 건가 싶었는데 미소를 보여주니 의아했다.


“으응. 뭐 만들었어? 맛있는 냄새 난다. 와인 가져왔어. 그리고 이거.”


효준은 멋쩍어하면서 희수 앞에 꽃다발을 내밀었다. 어쨌든 희수가 먼저 연락해서 초대해준 거니까 선물을 하고 싶었다.


“예쁘다. 고마워. 와인은 밥 먹고 마시자.”


“그래.”


안으로 들어온 효준은 희수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희수가 꽃다발에 코를 묻고 향기를 맡고는 비어 있는 꽃병에 물을 채워 꽃을 꽂았다. 

테이블에 꽃병을 놓고는 기분 좋은 표정으로 꽃을 응시하다가 몸을 돌려 주방으로 가려고 했다. 그때 효준이 그녀를 잡아당겨 뒤에서 안았다.


“효준 씨.”


“초대해줘서 고마워. 당신 전화 받고 깜짝 놀랐어.”


“왜 놀라요?”


“평생 싸우면서 살아야 하는 줄 알았거든.”


효준이 희수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고 향기를 맡았다. 


희수는 그의 목덜미에 닿는 그의 숨결을 느끼고는 몸을 돌려 그를 끌어안았다. 그리고 두 사람은 달콤한 키스를 했다. 

입술과 입술이 부딪쳐 아카시아 향기처럼 은은하고 달달한 맛을 자아냈다. 

입술이 벌어져 혀와 혀가 만나 열정적으로 엉키면서 짜릿한 희열을 불러일으켰다. 서로의 숨결을 느끼다가 희수가 먼저 효준에게서 떨어졌다.


“희수야.”


“오늘 소진선 씨 만났어.”


“뭐라고?”


효준이 놀랐다. 으름장을 놓아서 희수를 건들지 않을 줄 알았는데 예상이 빗나갔다.


“놀랄 거 없어. 내가 당한 게 아니라 나 때문에 소진선 씨가 놀랐을 거야.”


“무슨 말이야?”


“나, 전에 당신 장인어른이 청음에 왔을 때 대화하는 거 들었어. 뒷부분만 들었는데 이혼한 이유가 소진선 씨한테 있다는 말이었어. 

그 말을 추측해서 그딴 짓을 해놓고 어떻게 재결합을 운운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고 했어. 얼마나 뻔뻔한 거냐고. 그리고…….”


“그리고 뭐?”


“잤다는 얘기도 했어.”


“으응?”


“날 아프게 한 사람이잖아. 나한테서 당신을 빼앗은 여자잖아. 상처받고 싶지 않았어. 이혼했지만, 그래도 당신 와이프인데 꿀리고 싶지 않았어. 

마음 같아서는 머리채 잡고 싸우고 싶었는데 그러진 못했어. 당신한테서 떨어지라고 하는데 속이 뒤집히는 것 같았어. 그래서 내가 당신 아내한테 모질게 굴었어.”


“아내 아니야. 이혼한 거 알면서 그래. 미안해. 내가 더 단속해야 했는데 어디로 튈지 모르는 사람이야.”


“아니. 오늘 그렇게 만나서 퍼붓고 나니까 마음이 좀 풀렸어.”


“존칭 안 쓰고 말 놓으니까 편하다. 예전의 강희수를 보는 것 같아.”


효준은 희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자신이 알던 희수가 아니었다. 8년 전의 강희수였다면 진선 앞에서 고개도 들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소진선에게 모진 말을 던졌다니, 믿기지 않았다.


“밥 먹자. 배고파.”


효준의 말에 희수는 주방으로 들어와 식탁을 차렸다. 밥을 먹는 동안에는 별말 하지 않았다. 


효준은 간만에 정말 밥다운 밥을 먹었다. 8년 만에 처음으로 밥을 먹은 기분이었다. 

맛있고, 고급스러운 음식을 많이 먹었지만, 항상 헛헛하고 포만감을 느끼지 못했다. 희수가 해준 밥을 먹으니 배가 불렀다. 

쌀밥도 윤기가 흐리고 차져서 맛있었고, 반찬들도 정성이 가득 들어가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설거지 내가 할게.”


효준이 말했다.


“손님이 무슨 설거지를 해.”


“나, 손님이야?”


“손님 아니면 뭐야?”


“손님 싫은데.”


희수가 일어나 움직이자 효준도 벌떡 일어나 그릇을 씽크대에 넣고는 설거지를 시작했다. 희수는 반찬을 정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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