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야설

욕망의 포효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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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수가 몸을 돌리려고 하자 효준이 다시 그녀를 잡아 세웠다.


“왜 이래요?”


“회식 아직 안 끝났어. 내가 분명 전원 참석이라고 하는 거 들었을 텐데?”


“마음에 안 들면 잘라요.”


“자르면 갈 곳은 있고?”


“일할 곳이 청음뿐인 줄 알아요?”


“내가 멀쩡하게 일하도록 둘 것 같아?”


“뭐라고요?”


뻔뻔한 효준의 말에 희수는 두 눈을 부릅떴다. 어떻게 이런 말을 서슴없이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얼마나 파렴치하면 이럴 수 있는지 희수는 가늠할 수 없어 그를 노려봤다.


“그러니까 얘기 좀 하자고. 왜 사람을 자극해?”


“자극?”


효준은 희수의 반응을 무시하고 길가로 나와 택시를 잡았다. 택시가 서자 차 문을 연 효준은 희수에게 타라는 듯 고갯짓을 했다. 

도대체 무슨 얘기를 하려는 건지 들어보자는 심산으로 희수는 택시에 올라탔다. 

그가 옆자리에 타자 그녀는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와 재회한지 일주일이 지났다. 직원들도 대표가 왔다는 얘기만 들었지, 얼굴을 본 건 오늘이었다. 

인간성이 나쁜 사람은 아니었다. 다만 자신과 인연이 길지 않은 사람이기 때문에 헤어지게 된 거라고 생각하며 마음을 접었다. 

미워하기도 하고 증오하기도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런 마음도 사라졌다. 아니, 사라졌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다시 보니 미움과 증오가 스멀스멀 피어났다.


택시가 목적지에 도착하자 효준이 먼저 내리고 희수가 내렸다. 커피전문점으로 들어온 두 사람은 자리를 잡고 앉았다.


“뭐 드시겠어요?”


“뭐 마실 거야?”


“커피요.”


“같은 거요.”


“네.”


주문을 받은 사람이 가자 효준은 앞에 앉아있는 희수를 빤히 쳐다봤다. 희수는 그를 보고 싶지 않아서 시선을 다른 곳에 두었다.


“나 좀 봐.”


효준이 말했다. 희수가 말을 듣지 않자 그는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두들겼다. 늘 하던 버릇이라 희수는 여전한 그의 버릇에 자신도 모르게 그를 쳐다봤다.


“기억하고 있네?”


“뭘요?”


“나에 대해서.”


“아니요. 기억하는 거 하나도 없어요. 당신은 내 기억 속에서 잊힌 사람이에요.”


“그런데 날 보고 그렇게 놀랐어? 그냥 놀란 게 아니라 부들부들 떨던데?”


“웃기지 마요. 그런 적 없어요.”


“우기면 자존심이 지켜지나?”


“뭐가 어째요?”


“나한테 자존심 지키고 싶어?”


“무슨 말을 하는 거예요?”


그때 주문한 차가 나와 두 사람의 대화가 끊겼다. 테이블에 찻잔이 놓이자 희수는 잔을 들고 호호 불어 커피를 마셨다. 

앞에 앉아있는 낯설지 않은 윤효준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가늠할 수 없었다. 이제 와서 할 말이 뭐가 있다고 사람 속을 긁는지 납득이 되지 않았다.


“잘 지냈어?”


“잘 지냈어요.”


“그 존댓말 상당히 거슬리는데?”


“내 알 바 아니에요.”


“왜 결혼 안 했어?”


“당신 기다렸다는 말을 듣고 싶어요?”


“그랬다면 좋고.”


희수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담담한 표정의 얼굴로 능청스럽게 구는 그를 죽일 듯이 노려봤다.


“개인적으로 아는 척하고 싶지 않아요. 내가 청음을 관두길 바라지 않는다면 아는 척하지 마요. 내가 주방 막내인데 대표님과 직접 얘기할 일도 없잖아요.”


“갑은 나야.”


“무슨 갑이요?”


“청음에 들어올 때 계약서 썼을 텐데?”


그랬다. 석 달 전에는 청음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평범한 레스토랑에서 셰프로 일하고 있었다. 

휘석이 <청음>에서 사람 구한다는 광고를 냈으니까 한번 면접을 보라고 말했고, 그래서 <청음>을 찾았다.

2차 면접까지 봤는데 출근하라는 말과 함께 그 자리에서 계약서를 썼다. 

특별한 내용은 없었다. 일하는 동안 지켜야 할 것들만 제시되어 있었다.


“썼어요.”


“내용 안 읽었어?”


“읽었어요. 특별한 내용 없었어요.”


“갑은 청음이고, 을은 강희수지. 갑이 요구하면 뭐든 수락해야 한다는 항목이 있었을 텐데. 그리고 사직은 특별한 상황이 아니면 을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항목도 있을 거고.”


“뭐, 뭐라고요?”


“본 기억 없어?”


무슨 말이냐는 듯 희수가 두 눈을 크게 뜨자 효준은 휴대폰을 꺼내 찍어놓은 계약서를 펼쳐 희수에게 내밀었다. 


화면을 터치하며 내용을 확인하던 희수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마지막 부분에 그런 내용이 있었을 줄이야. 본인의 사인도 명확하게 보였다. 

왜 이 내용을 보지 못했을까? 아니, 봤는데 대수롭지 않게 여긴 걸까? 

레스토랑 측에서 요구할 거라면 일에 관한 거 말고 뭐가 있겠는가. 이렇게 윤효준과 마주 앉게 될 일은 꿈에도 상상 못했던 일이었다.


“그래서요?”


“월급이 많은 것도 그 항목이 있었기 때문이야. 내가 뭘 시키든 당신이 따라야 하니까.”


경력직이긴 해도 월급이 많아서 좋다고 생각했다. 유명한 <청음>이니까 일이 힘들 거라고 각오도 했다. 

물론 퇴근하고 집에 가면 녹초가 될 정도로 일은 힘들었다. 전에 일하던 곳에서의 힘듦은 힘든 축에도 들지 않았다. 


첫 월급을 통장으로 받았을 때 그 힘들다는 생각은 확 날아갔다. 액수가 마음을 뿌듯하게 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것이 함정이었다고? 윤효준이 펼쳐 놓은 그물에 걸린 거라고? 

괴롭고 고통스러웠던 인생의 고비를 잘 넘기고 지금은 열심히 일하면서 잘살고 있는데 삶의 복병이 나타난 것일까? 또 윤효준 때문에 고통을 받아야 하는 걸까?


“할 말을 확실하게 해요.”


효준은 커피를 마셨다. 마치 희수의 애간장이라도 태우려는 사람처럼 천천히 느긋하게! 그런 그를 바라보는 희수는 입술이 바짝 말라 혀로 입술을 핥았다. 


초조함에 한 희수의 그 행동이 효준의 본능을 자극했다. 

그녀의 입술은 자신의 것이었다. 입술만이 아니라 그녀의 모든 것은 자신 거였다. 


그녀가 혀로 핥는 입술은 도톰하면서 예뻤다. 핥고 싶다는 욕망이 그를 뒤덮었다.


진선과 관계가 틀어지기 시작한 것은 3년 전부터였다. 그 후로 여자를 안지 않았다. 일도 바빴지만 진선에게 환멸을 느껴 여자를 가까이하고 싶지 않았다. 지금 그의 본능을 자극하는 건 희수뿐이었다.


“우리 다시 시작하는 거 어때?”


그는 분명 한국말을 했는데 외국어를 한 것만 같았다. 알아듣지 못한 희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서서히 그의 말을 알아들은 그녀의 얼굴은 그야말로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무섭게 변했다. 

윤효준에게 농락당하는 것만 같아서 8년 동안 먹었던 음식들이 목구멍으로 치솟는 것만 같았다. 


미치지 않고서는 할 수 없는 말을 한 그를 응시하는 그녀의 눈에서는 독을 머금은 눈빛이 발산되었다. 

찻잔을 잡고 그녀의 손이 발발 떨렸다. 

어떻게 자신에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는지, 그가 인간이기는 한 건지, 자신이 알고 있던 윤효준이 맞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희수는 입술을 꽉 깨물며 효준을 노려봤다.


***


오늘은 희수가 한 달에 세 번 쉬는 날 중 하루였다. 날이 밝았지만, 희수는 아직 잠에서 깨지 않았다.

집안은 고요했고, 평화로운 기운만이 감지 됐다. 희수가 침대에 누워 잠들어 있는데 현관에서 띠띠띠 하고 비밀번호 누르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에 놀란 희수가 벌떡 일어났다. 무슨 소리가 들린 것 같은데 무슨 소린지 구별할 수 없었다. 

잠이 덜 깨서 침대에서 내려와야 한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밥 먹자.”


노크도 없이 방문을 확 열고 안으로 들어온 휘석이 힘차게 말했다.


“휘석아.”


“오늘은 데이트 좀 하자.”


“데이트?”


“늘 바쁜 친구 얼굴 보기 힘들잖아. 오늘은 나도 쉰다.”


“너 쉬는 날 아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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