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야설

욕망의 포효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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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준은 대표실로 들어왔다. 오랫동안 비워둔 공간이지만 성 실장이 관리를 잘해서 쾌적한 환경 그대로였다. 

그가 소파에 앉는데 노크 소리가 들리고 성 실장이 차를 들고 들어왔다.


“여기 어떻습니까?”


성 실장이 물으며 자리에 앉았다.


“깨끗하고 좋네.”


“출근하신 지 일주일인데 직원들하고 인사도 나누어야죠.”


“그래야지.”


“그분은 어떠신 것 같아요?”


“일은 깔끔하게 잘하는 것 같더군.”


“왜 8년이나 지나서 그분을 찾으신 겁니까?”


“글쎄다. 왜 그랬을까?”


“사모님하고의 관계는 완전히 정리된 겁니까?”


“응. 그동안 고생 많았다. 고맙게 생각해.”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그만큼 받고 있지 않습니까.”


“돈이 전부가 아니잖아.”


“저한테는 전부입니다.”


성 실장의 농담에 굳어 있던 효준의 얼굴에 살짝 웃음기가 감돌았다.


“어디로 들어가실 겁니까?”


“자네가 마련해 놓은 곳은 이제부터 내 집이야.”


“알겠습니다. 차도 조금 있다가 도착할 겁니다.”


“응.”


“나가보겠습니다.”


효준이 고개를 끄덕이자 성 실장이 나갔다. 차로 목을 축인 효준은 등을 등받이에 기대며 다리를 꼬았다. 


8년 만에 만난 희수는 나이를 먹지 않은 것 같았다. 8년 전 그대로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자신을 보고 놀라서 발발 떠는 모습을 보니 안쓰러웠다. 손이라도 잡아주고 싶었지만 8년이라는 세월의 골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희수는 언제나 사랑스럽고 다정했다. 언제나 마음을 다해서 챙겨주고 사람 마음을 편하게 해주던 착한 여자였다. 

그런 여자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준 못난 놈이 바로 자신이었다.


자신과 눈도 제대로 못 맞추고 서 있는 희수를 보는 것은 고통과도 같았다. 


촬영 끝나고 스텝들이 돌아가자마자 희수는 모습을 감추었다. 그 즉시, 희수에게 다가가서 얘기 좀 하자고 하고 싶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자신을 보고 새파랗게 질리는 그녀가 안쓰러웠다. 

원수 같은 놈을 봤으니 당연한 일이겠지. 이렇게 생각하면서도 그녀의 반응이 탐탁지 않았다. 얼마나 이기적인 생각인가. 알지만 본심은 그랬다.


“강희수. 강희수…….”


그는 그녀의 이름을 읊조렸다. 헤어지자고 했을 때 울면서 자신을 잡던 앳됐던 희수가 눈앞에 어른거렸다. 

울며불며 매달리던 희수를 몰인정하게 뿌리쳤던 철없던 시절의 자신도 떠올랐다. 

그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가 떴다. 

그때 휴대폰이 울렸다. 재킷 안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액정을 보니 진선이었다. 그는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가 휴대폰을 귀로 가져갔다.


“나야.”


[나, 서울이야.]


“그래.”


[당신 뜻대로 될 거라고 생각하지 마.]


“당신 뜻대로 될 거라고도 여기지 마. 이미 우린 끝났어.”


[그건 당신 생각이지. 당신이 내 조건 보고 결혼했던 거 몰랐던 거 아니야. 내 덕에 지금의 자리까지 올랐는데 은혜도 모르고 인연을 끊자고? 당신 인간 맞아?]


“그만해. 되풀이되는 얘기 지겨워. 이미 우린 이혼서류에 도장 찍었어.”


[되돌릴 수 있어.]


“그럴 이유가 뭐야? 당신이야말로 양심이 있어? 당신이 나한테 이럴 자격이 있냐고.”


[여보.]


“됐어. 장인어른은 찾아뵐 거야. 하지만 당신은 볼 이유 없어. 끊어.”


진선이 뭐라고 하기 전에 효준은 전화를 끊고 테이블에 휴대폰을 던지듯 내려놓았다. 

누굴 탓하겠는가. 자신의 인생을 꼬이게 만든 것이 바로 자신인데 말이다. 


진선에게 쌀쌀맞게 말했지만, 지금의 상황을 만든 건 자신의 책임도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진선과 다시 잘해볼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는 몸을 일으켜 사무실을 나와 주방을 향했다. 

형식적인 인사 자리를 만들고 싶진 않았다. 주방에 도착하니 다른 셰프들과 바쁘게 움직이며 일하는 희수가 눈에 들어왔다.


잡지로 보던 작품보다 실제로 보니 그녀의 작품은 훌륭했다. 그녀를 <청음>에서 일하게 한 것도 잘한 일 같았다. 

그때의 마음은 좋은 환경에서 일하게 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희수를 응시하고 있는데 일하던 셰프가 몸을 돌리다가 그를 보고 반가움에 다가왔다.


“대표님!”


일하던 주방 사람들의 눈이 전부 효준에게로 향했다.


“대표님.”


그를 알고 있던 직원들은 그에게 몰려들었다. 몇 년에 한 번씩은 나왔었기에 대표 윤효준을 아는 직원들도 있었다.


“잘들 있었어요?”


“언제 오셨습니까?”


“다니러 오신 겁니까?”


“아닙니다. 완전히 귀국했습니다. 앞으론 여러분하고 같이 일할 겁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저희가 잘 부탁드립니다.”


“환영합니다, 대표님! 회식 한번 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그렇게 하시지요. 오늘 저녁에 회식하도록 하죠. 성 실장님?”


“네, 대표님.”


성 실장이 다가왔다.


“오늘 저녁 회식 장소 알아보고 예약해둬요. 빠지는 직원 없이 모두 가는 겁니다.”


“네.”


환호하는 직원들 틈에 섞여 있는 희수를 보며 효준은 강조하며 말했다.


“그럼 수고들 해요. 이따 봅시다.”


효준은 몸을 돌려 주방에서 빠져나왔다. 


자꾸 희수에게 눈이 갔다. 8년 동안 희수를 생각하지 않았다면 그건 거짓말이다. 

모질게 쳐내버린 여자를 생각하는 자신이 너무도 한심했다. 

진선에게 미안한 마음도 들어 생각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쉽지 않았다. 

마음속에 자리하고 있었던 희수는 따뜻한 보금자리 같은 자랑할 수 없는 보물이었다.


***


1차로 고급 식당에서 소고기 파티를 하고 2차로 노래방에 온 사람들은 신나게 노래 부르고 춤추면서 술을 마셨다. 

그 틈에 낀 희수는 제대로 먹지도, 즐기지도 못했다. 이 자리가 너무 불편하고 가시방석일 뿐이었다. 

한쪽에 앉아서 술만 홀짝이는데 이 자리에 있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사람들 눈치 못 채게 조용히 가방을 들고 나왔다. 

누군가의 눈에 띄면 잡힐지도 몰라서 후다닥 노래방을 나왔다. 바깥 공기가 시원하게 피부에 닿았다.


“후우. 하아.”


탁한 숨이 터져 나왔다. 잠시 서서 심호흡하고는 걸음을 내디뎠다. 


오늘 오후부터는 시간이 어떻게 흘렀는지 알 수 없었다. 

회식이라니, 참여하고 싶지 않아서 빠지려고 했다. 직원들이 꼭 같이 가야 한다고 해서 어쩔 수 없이 끌려왔다. 

직원들에게는 인정받는 대표 같았다. 직원들 복지에 꽤나 신경 쓰는 대표라는 말을 들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택시를 탈까, 버스를 탈까 고심하며 걷는데 갑자기 어깨를 잡은 손에 놀라 몸을 홱 돌렸다.


“어디 가?”


효준을 본 그녀는 어깨에 닿아있는 그의 손을 쳐냈다. 따라 나온 그가 어이없고 기가 막혔다. 아는 척하는 것도 구역질이 나려고 했다.


“대표님은 왜 나오셨어요?”


“그렇게 말하지 마.”


“그럼 뭐라고 해요?”


“차 한잔하자.”


“싫어요.”


“따라와.”


그가 팔을 잡자 그녀는 거칠게 뿌리쳤다.


“손대지도 말고, 차도 안 마실 거예요. 아는 척하지도 마세요. 당신은 그냥 대표님일 뿐이에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니까 날 그냥 두라고요.”


“내가 뭘 어떻게 한 대?”


“차도 같이 마시고 싶지 않고, 마주 앉아있고 싶지도 않아요. 갈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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