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야설

청춘예찬 28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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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그녀는 한번에 대답을 하지 않았다. 눈은 책을 보고 있는 듯하지만, 집중해서 보고 있는것 같지는 않았다.

오히려 무언가를 신중하게 생각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네. 학기중에 다녀올까 해서요."


"하..학기중에?"


"졸업하고 가야하긴 하지만. 학기중에 가보려구요. 그게 더 도움이 되기도 하고."


"그..그렇구나."


"죄송한데. 이제 공부좀 해야하니 나중에 대화하면 안될까요?"

 


승민은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지만, 채윤은 자신을 바라보지 않고 있었다. 순식간에 그녀와의 거리가 몇천 키로미터 정도는 멀어진것만 같아서 승민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건 아니었다. 어째서 그녀와 이렇게 멀어져야 하는것일까. 승민은 도통 납득이 되지 않았다. 그녀와 자신이 꼬일대로 꼬여버린 인연이라는거. 이제는 천천히 인정을 해야만도 할것같았지만, 이대로 뒤틀려 버리는것은 싫었다.


 


"미국은...안 가도 되지 않니?"

 


채윤의 동작이 살짝 멎었다. 그녀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승민을 바라보았다. 머뭇거리며 말을 할 줄만 알았는데 그는 고개를 떨군 무표정의 상태였다.

 


'흔들지 말아요. 제발.'

 


채윤이는 이 말이 너무나 하고 싶었다. 하지만 말 하지 못하고 목에서 꿀꺽 그 말을 삼켜버렸다. 가슴속에서 계속해서 맴도는 그 말을, 승민에게는 할 자신이 없다. 그런 그녀의 마음을 아는건지, 모르는 건지, 승민은 살짝 망설이며 말했다.



"미국에 가지 않아도..잘할수 있잖아 너라면...한국은 왜 안되는 건데?"

 


채윤의 눈이 순식간에 촉촉해 진다. 핑크빛 입술역시 조금씩 떨려오기 시작했다. 그런 그녀가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그럼...저는 왜 안되나요."


"뭐...뭐?"


"저는...왜 안되냐구요. 선배한테...저는 왜 안되죠?"

 


승민은 당황해버리고 말았다. 채윤은 고개를 숙이고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승민의 눈망울도 조금씩 떨려왔다.

 


'채윤아..너..'

 


그의 가슴도 뛰었다. 아니,정확히 말하자면 갈기갈기 찢어지는 듯 아팠왔다. 채윤이 자신을 맘에 두고 있다는 마음이 들어왔던 것도 사실이었지만, 이루어 질수 없다고 믿었던 그였다.

그러기에는 그가 짊어지고 갈 죄책감이 너무나 컸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승민은 늘상 괴로웠다. 왜 자신은 형준처럼 인연을 딱 잘라내지 못할까하는 죄책감이었다. 

하지만 이제서야 희미하게 승민은 느끼고 있었다.자신역시...마음속에 채윤이 차지하는 비중이 너무나 크다는 사실이었다.



"미안해요. 그냥 제가 한말은 잊어버려요. 그만 가볼게요."

 


채윤은 고개를 숙인채 가방을 챙겨 연구실을 도망치듯 나가버렸다.

 


"자..잠깐만.."

 


본능적으로 그녀를 불렀지만, 차가운 철문이 닫히는 소리와 함께, 뛰어가는 듯한 그녀의 구두소리가 연구실복도에서 점점 멀어져간다.

승민은 그녀를 따라가지 못했다. 가서 잡을 수 없는 자신의 모습과 상황이 원망스러웠다. 그녀를 따라가서 잡는다면 어제 하은과 한 약속은 물거품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채윤과 멀어진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아팠다. 사랑과 연애라는 방면에 무기력한 자신이 더 더욱 싫어지는 순간이었다.

 


"무슨일 있는거야?"

 


고개를 들자 기계과 동기가 낑낑거리며 난로를 들여놓고 있었다. 중앙난방을 하기에는 아직 이른 시기이기도 했지만, 밤을 세는 작업이 종종있는 그들에게는 남들보다 조금 일찍 난로를 가동한다. 게다가 그것은 요즘같은 세상에, 그리고 덧붙여서 공대인들의 연구실에 놓기에는 너무나 아이러니한 구식 난로였다.



"아..응. 아무것도 아냐."


"채윤이는 왜 저렇게 뛰어가는데? 너 뭐 잘못했어?"


"잘못이라니...그런거 아냐."


"너가 잘못했겠지. 채윤이에게 무슨 잘못을 저지를 정도로 걔랑 친한 사람은 너밖에 없잖아?"

 


동기의 말에 승민은  한숨을 쉬며 고개를 숙였다. 그런 그를 그의 동기는 알수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리며 바라볼 뿐이었다.


 


-


승민은 걷고 또 걸었다. 목적지는 어딘지 모르지만, 그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방황하고 있었다. 자신의 집앞을 지나고, 눈에 익은 여러 장소를 지났다. 

술이 마시고 싶었지만, 대낮부터 취하긴 싫었다. 



'아...여긴...'

 


하은이가 가르치는 학원중에 하나다. 예전에 어렴풋이 한번 와본기억이 있었는데,시내를 거닐다 보니 자연스레몸이 기억하고 이리로 이끈 모양이다.

승민은 천천히 고개를 들어 2층의 창문을 바라보았다. 아름다운 선율이 멈추는가 싶더니, 창문 너머로 희미하게 하은의 얼굴이 보인다. 곧이어 '수고하셨습니다!'라고 외치는 원생들의 목소리들도.



'어째서 이리로 온걸까?'



사람이란 참으로 간사한 모양이다. 힘들어서 이곳에 온 것을 하은이 안다면, 그녀는 또 얼마나 힘들어 할까? 



"어머...승민아."


 

한참을 그렇게 망설이며 서있는데 하은이 나왔다. 약간은 쌀쌀해진 날씨 탓일까. 그녀는 조금은 두꺼운 외투를 입고 있었다.

승민울 보고 놀랐는지 살짝 커진 눈망울로, 승민을 바라보고 서있었다.



"안녕."

 


승민은 어색하게 웃었다. 잠시 멍하게 있던 하은은 자그마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왠일이야? 연락도 없이..."



"그냥...그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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