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야설

창녀를 위한 소나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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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거실에서


사랑 : 이성에 끌려 몹시 그리워하는 마음, 또는 그런 관계나 상대.

언제부터였을까. 사람들이 사랑의 존재를 믿지 않기 시작한 것이.


대학 시절, 캠퍼스 커플로 유명했던 나와 남편은 3년여에 걸친 연애 시절에 종지부를 찍고 결혼하기에 이르렀다.

처음엔 사랑인 줄로만 믿고 있었고 그 이면에 숨겨진 야누스적인 허상을 일부러 보지 않으려 애를 썼던 것 같다.


사랑과 결혼에 대한 환상이 깨지면서 나는 사랑을 믿지 않기 시작했다.

남편을 한 번도 그리워 해본 적이 없었고, 결혼생활은 지루하기 짝이 없었다.


밤마다 당연한 권리를 주장하듯 내 몸을 요구해오는 남편에게 환멸을 느끼고 있었다.

남편은 피곤함에 지친 몸으로 퇴근했어도 성욕만큼은 반드시 채우고야 말았다. 언제나 내 기분과는 상관없이.


나는 남편에게 있어서 집안일을 돌보고 일방적인 성욕을 채워주는 공기 같은 존재였을 뿐이었다.

섹스에 대해 알기도 전에 내 의식은 성을 거부하고 있었다.


남편이 알고 있는 결혼 생활이라는 것은 발기된 딕과 촉촉이 젖은 푸쉬만 대접받을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사랑에 대한 환상이 깨지면서 삶의 의욕조차 잃어가고 있었다. 나는 막연하게 자살을 꿈꾸기 시작했다.


`사랑은 없어.`


멍하니 거실에 앉아 음악을 들으면서 이렇게 혼잣말하는 횟수가 늘었다.

때가 되면 밥이나 던져주는 애완동물이나 관상용 물고기가 된 기분이었다.


커가면서 삶에 찌든 어른들의 공허한 눈빛을 눈여겨보게 되었지만, 내가 그들과 같아질 줄은 꿈에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그것은 현실이 되어가고 있었다. 채워도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허무함. 고독. 외로움. 이것만이 나를 지배하고 있었다.


내가 처음 미선을 만난 것은 대학교 동기였던 진희가 느닷없는 전화로 자기 집에 초대를 했기 때문이었다.

진희와 나는 같은 아파트의 한 동 건너에 살고 있는지라 서로에 대해 모르는 것이 없었다.

진희와 나는 같은 아파트의 한 동 건너에 살고 있는지라 서로에 대해 모르는 것이 없었다.


진희는 호들갑스럽게 웃으면서 나를 반겼고, 거실엔 나 말고도 서너 명의 여자들이 수다를 떨고 있었다.

애초에 숫기가 없던 나는 조용히 눈인사로 대충 때우고 아무 곳에나 자리를 잡고 앉았다.


낯선 방문자가 들어와서 대화가 끊겼는지 서로 아무 말 없이 다과를 즐기다가 얼굴이 눈에 익자마자 본론으로 접어 들어가기 시작했다.

무엇이 그리 좋은지 우리보다 한참 연배로 보이는 아줌마 두 명은 입안에 씹고 있던 과일까지 밖으로 방출시키며 은밀한 웃음을 주고받고 있었다.




"새댁은 앞 동에 산다면서? 이사 온 지 한 달밖에 안 돼서 잘 모르겠네. 우린 이렇게 가끔 떠들다 집에 간다오."

"예? 예."


아줌마들은 연신 벙긋거리며 내 신상에 대해 이것저것을 물어보았다.

나는 짜증 나는 몸짓으로 시큰둥하게 둘러대면서 진희와 함께 소파에 앉아 얘기를 나누는 한 여자에게서 눈길을 떼지 못했다.


정말 눈에 띄는 여자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 여자는 진한 화장에 긴 생머리를 하고 있었다.

짧은 원피스가 무척 원색적이었다.

진희의 풍만한 몸매에 비해서 그 여자는 매끈한 몸을 갖고 있었다.


"어머, 내 정신 좀 봐. 아직 인사도 안 시켰네?

얘는 미선이라고 해. 학교는 다르지만, 우리 선배 언니의 동생이었거든.

미선아. 쟤는 내 동기 주영이야.

얼마 전에 우리 아파트로 이사 왔지 뭐니.

이사할 때 마침 내가 지나갔기에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앞뒤에 살면서도 전혀 모를 뻔했어."


"그래? 반가워요."


내가 어정쩡하게 억지로나마 웃어주었지만, 미선은 가볍게 목을 까딱이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하고 다시 진희와의 수다에 정신을 뺏기고 있었다.


"아까 하던 얘기 마저 할게. 하여간 그래서 우리 아이 아빠가 힘을 못 쓰고 낑낑대고 있지 뭐야.

그야 당연히 대낮에 그년하고 여관엘 다녀왔으니 힘이 남아돌 리 있어? 내가 물었지.


`무슨 일 있었소? 왜 이렇게 힘을 못 쓰우?`


그러면서 내가 이를 악물고 그걸 꽉 쥐었거든.

아이 아빠가 소리를 꽥 지르면서 방바닥으로 굴러떨어지더니 데굴데굴 구르는 거야.

얼마나 속이 시원하던지.

내가 그 여우 같은 년을 모르는 줄 알고 있나 봐. 누구 눈을 속이려고."



"아유, 세상에. 그렇게 안 봤는데 그 아가씨 정말 못 쓰겠구먼. 우리 남편도 거기에 가나 안 가나 한번 봐야겠어.

이 남자 저 남자 꼬리나 살살 쳐대니 시집도 못 가고 겨우 카페에서 주스나 나르고 있지."


예쁘거나 잘 빠진 곳이라곤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는 아줌마들은 남편의 바람기를 도마 위에 놓고 난도질하기를 즐겼다.


그들은 결혼한 것을 무공훈장만큼이나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나는 왜 진희가 나를 이런 어처구니없는 대화에 초대했는지 심중을 읽을 수 없어서 애꿎은 스커트 자락만 손으로 비벼대고 있었다.


그 후에도 아줌마들은 한 시간가량을 더 떠들다가 서운하다는 표정으로 돌아갔다.


진희의 얘기로는 초대하지도 않았는데 제멋대로 찾아와서 저렇게 험담을 늘어놓는다는 거였다.

나는 그저 고개만 끄덕거리고 있었다.

진희는 아줌마들이 어질러 놓은 다과상을 치웠고, 미선은 소파에 앉은 채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시선이 거북해질 즈음에 진희는 내 곁에 바짝 다가와 낮은 목소리로 말을 했다.


"주영아. 너희 결혼. 언제 했었지?"

"일 년 정도 됐어."

"그럼. 이젠 맛을 알겠네?"

"맛?"


진희가 소리 없이 웃으며 미선을 바라보았다.

내가 부부관계에 아직도 아마추어라는 것을 서로 인정하려는 눈짓이었다.

나는 울컥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꾹 참고 대답하지 않았다.

흥미롭다는 듯이 그때까지 묵묵부답이었던 미선이 몸을 내밀며 나에게 물었다.


"남자 맛 말이야. 섹스하면서 오르가즘은 느껴봤니?"

"당연하지. 그런걸. 못 느끼면 어떻게 섹스해."

"그래? 너희 남편은 그럼 어떤 체위를 얼마나 구사하는데? 힘은 좋아? 관계는 일주일에 몇 번 정도 해?"


한꺼번에 너무 많은 것을 물어보았기 때문에 나는 머뭇거릴 수밖에 없었다.

남편과의 섹스는 아직도 나에게 고통으로 다가왔기 때문에 얼떨결에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그런 건 물어봐서 뭐 해?"

"좋아. 너 아직도 학교 다닐 때처럼 내숭 떨고 있는 건 아니겠지? 그렇다면 아예 지금 나가 줘."


미선은 딱 잘라 말하고 더 이상 별 볼 일 없다는 듯이 다시 소파에 몸을 밀착시키고 있었다.

기가 막혔지만 일단 고개를 가로젓고, 다음 질문 공세에 어떻게 대처를 해야 하나 걱정이 태산이었다.


"아니야. 주영이가 알고 보면 얼마나 개방적인 애인데. 요새 시대에 그렇게까지 앞뒤 막힌 여자가 어딨니? 그런 애였으면 부르지도 않았어.

주영인 내가 보장해. 염려하지 말아. 쟤네는 학교에서 제일 유명한 CC였다구."



딩동-


진희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초인종 소리가 들리는 바람에 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지금껏 그것을 기다린 사람처럼 진희가 총알같이 튀어 나가서 현관문을 열어주었다.


현관을 들어선 사람은 갓 대학교를 입학했을 앳된 얼굴의 젊은 남자였다.


"미선 누나가 불러서 왔는데요."


젊은 남자의 눈은 구두를 벗기도 전에 소파에 앉아 있는 미선에게로 향하고 있었다.

미선은 일어서서 반길 생각이 아예 없는 것처럼 보였다.


"영욱이 왔니? 이리 와."


미선은 언제나 그랬다는 듯이 손가락을 까딱거리고 영욱이 다가오기를 기다렸다.

말 잘 듣는 하인처럼 영욱은 우리에게 인사도 없이 얼른 구두를 벗고 미선에게로 가까이 갔다.


급작스러운 어린 남자의 공습에 나는 어리둥절해서 진희를 쳐다보았다.

진희는 서둘러 현관문을 단단히 잠그고 까닭 없이 눈을 빛내며 상기된 표정으로 내 팔을 잡아끌었다.


"이제부터 아주 좋은 구경을 하게 될 거야. 산통 깨지 말고 가만히만 있어. 알았지?"

"?"


나는 진희의 손에 이끌려 미선이 앉아 있는 소파의 건너편에 앉게 되었다.

진희는 침을 삼키고 있었다.


"영욱아. 안아 줘."

"누나. 너무 보고 싶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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