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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미 여인의 정사 - 2장. 폭풍의 밤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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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의 밤으로부터 나흘째 되던 아침이었다.

그녀는 대문 앞에 떨어져 있는 서류 봉투 하나를 발견했다.

아침에 배달되는 우유를 가져오기 위해 나갔을 때였다.


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봉투를 집어 들었다.

앞뒤에 주소가 씌어 있지 않은 것으로 보아 누군가 던져 놓고 간 것이 분명했다.


(이게 뭘까?)


그녀는 조심스럽게 봉투를 찢고 내용물을 꺼냈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다리가 휘청거렸다.


사진이었다.

봉투 속에는 그녀와 그녀의 딸 윤미의 알몸 사진, 사내들에게 강간당하고 있는 사진이 한 뭉치나 들어 있었다.


(비열한 놈들!)


그녀는 피가 역류하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사진엔 그들 모녀가 짓밟히고 있는 장면이 너무나 적나라하게 찍혀 있었다.

포르노 사진이 무색할 정도였다.

게다가 흑백으로 찍은 사진이라 선정적인 냄새가 더욱 진했다.


그녀는 하늘이 노랗게 보였다.

(누, 누가 이런 짓을...!)


그녀는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사진을 들고 남편의 서재로 달려갔다.

그녀는 말없이 남편의 책상 위에 사진을 놓았다.


남편이 무심한 눈빛을 사진에 던졌다.

사진을 들여다보는 남편의 얼굴이 서서히 흙빛으로 변했다.


"당신 누구한테 원수진 일 있어?"


남편의 목소리는 낮았으나 칼날처럼 차가웠다.


"없어요."

"그럼 누가 이런 짓을 하는 거야?"

"제가 묻고 싶은 얘기에요!"


그녀도 지지않고 남편의 얼굴이 똑바로 쏘아보았다.

당신이야말로 누구한테 피맺힌 원한을 산 일이 없느냐는 뜻이었다.


"난 아니야."


남편이 고개를 흔들었다.


"난 아무에게도 원한 같은 거 산 일이 없어!"

"그럼 왜 이런 일이 우리에게 일어나는 거예요?"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남편이 역정을 냈다.

그녀는 외면하는 남편의 눈에서 물기가 반짝이는 것을 보았다.

(이이는 아니야!)


그녀는 남편의 눈에 맺힌 눈물을 보고 가슴이 묵직하게 저렸다.

정체도 모르는 사내들에게 아내와 딸이 짓밟힌 남편도 희생자였다.


"이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해요?"


그녀가 눈물을 흘리며 물었다.


"모르겠어."


남편이 얼굴을 감싸 쥐고 고개를 흔들었다.


"당신 하자는 대로 할게요."

"뭘?"

"짐승 같은 사내들에게 겁탈당한 여자를 어떻게 데리고 살겠어요? 이혼해 드리겠어요."

"이혼?"

"당신은 나 아니더라도 다른 여자와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거예요."

"미쳤어?"


남편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럼 더럽혀진 여자와 함께 살 거예요?"

"당신 잘못이 아니야!"

"그래도 당신은 괴로울 거예요! 우린 이제 잠도 같이 잘 수 없어요! 아무리 잊어버리려고 해도 그 짐승 같은 놈들에게 짓밟히던 내 꼴이 당신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을 거예요! 그런데 어떻게 같이 살아요?"


"악몽이라도 생각하면 돼!"

"나도 당신한테 평생 죄진 기분으로 살 수는 없어요!"


그때 윤미가 유령이 움직이듯 느릿느릿 서재로 들어왔다.

그들은 재빨리 입을 다물었다.


"엄마!"


윤미의 눈에서는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리고 있었다.


"우리 죽어요, 우리 함께 자살해요!"

"뭐라고?"


그녀는 깜짝 놀라서 남편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남편도 태연히 놀란 표정으로 그녀와 윤미를 번갈아 살피고 있었다.


"보세요!"


윤미가 손에 들고 있던 봉투에서 한 뭉치의 사진을 꺼내 책상 위에 던졌다.


"어제 아침에 대문 앞에 떨어져 있던 거예요!"

"그, 그럼 너도 사진을."


딸이 보아서는 안 될 사진이었다.

그녀는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런 게 만약에 학교로 배달되면 어떻게 하겠어요?"

"하, 학교로?"


남편이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것뿐이겠어요? 아빠의 직장으로도 배달되고 마을에도 배달되면 창피해서 어떻게 살아요?"

"이사를 하면 돼"

"차라리 죽는 편이 나아요!"

"어린아이가 못 하는 말이 없구나."


그녀가 찢어질 것 같은 가슴을 움켜쥐고 겨우 입을 열었다.


"이런 꼴로 어떻게 살아요? 전 죽고 싶어요!"

"윤미야!"

"싫어요! 엄마도 싫고 아빠도 싫어요!"


윤미가 울면서 서재를 달려 나갔다.

그들은 고압선에 감전이라도 된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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