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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미 여인의 정사 - 3장. 가을 소나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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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누구에게 협박받은 일이 있습니까?"

"없어요."

"원한을 산 일은요?"

"그런 거 없어요."

"남편의 여자 문제는 어떻습니까?"

"없을 거예요."

"부인께서는요?"

"네?"

"남자관계 말입니다."

"없어요."

"아무튼 고맙습니다. 빨리 쾌유하시길 빌겠습니다."

"수사를 할 건가요?"

"물론입니다."

"..."

"또 찾아뵙겠습니다."


형사가 고개를 꾸벅거리고 병실을 나갔다.

그녀는 강도 중에 여자도 한 명 있었고, 그녀와 딸이 강간당하는 모습을 카메라로 찍었다는 것을 말하지 않은 것을 잘했다고 생각했다.

그런 일을 모조리 형사에게 말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그녀의 남편과 딸의 장례는 이틀 후에 치러졌다. 장지는 천주교 인천 교구 소속의 백석 공원묘지였다.

그녀는 한사코 장례식에 참석하겠다고 했으나 의사의 만류로 참석할 수가 없었다.

그 대신 병실의 유리창으로 그녀는 남편과 딸의 마지막 떠나는 모습을 배웅했다.

(잘 가요. 당신을 따라가지 못해 죄송해요.)


그녀는 마음속으로 그렇게 작별했다.

물론 그녀의 딸 윤미에게도 작별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래, 우리 하늘나라에서 만나자. 윤미야...)


그녀는 한 달 남짓 병원에서 치료받았다.

그동안 경찰의 수사는 활발히 진행되었다.

그녀가 사는 집 근처에 있는 파출소에 수사본부가 설치되고, 주변 우범자와 불량배들이 빠짐없이 수사본부에 연행되어 조사받았다.


그러나 수사는 공전을 계속했다.

사건이 발생한 지 1주일 만에 사건이 인지되었는 데다 피해자는 둘이 죽었고, 하나가 병원에 입원해 있었다.

범인들이 남긴 족적, 지문, 머리카락, 정액... 단서가 될 만한 것들도 남아 있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사건 발생 다음 날 그녀가 깨끗이 쓸고 닦았기 때문이다.


그녀는 애당초 사건을 경찰에 신고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짐승 같은 짓을 당한 일을 경찰에 신고한다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남편도 딸도 원하지 않는 일이었다.


보옥은 10월 초에 병원에서 퇴원했다.

의사는 아직도 2주일 남짓 더 병원에서 치료받아야 한다고 그녀의 퇴원을 만류했으나 사흘에 한 번씩 통원 치료를 받기로 하고 퇴원했다.

그녀는 퇴원하는 깃에 남편과 딸이 묻혀 있는 백석 천주교 공원묘지부터 찾아갔다.

양지바른 곳이었다.

아직 잔디도 입히지 않은 두 개의 봉분이 수많은 무덤 가운데 나란히 누워 있었다.


(부디 영생을 누리세요.)


그녀는 가지고 온 국화꽃을 남편의 봉분 앞에 놓고 꿇어앉았다.

(복수하겠어요! 평화로운 우리 가정을 짓밟은 짐승 같은 놈들에게 복수하겠어요!)


그녀는 입술을 피가 나오도록 깨물었다.


"술 한잔할래?"


친정아버지가 주머니에서 조그만 양주병을 꺼냈다.


"죄송해요, 아버지."

"네가 죄송할 건 없다."

"이렇게 추한 꼴을 보여 드려서..."

"세상이 어지러운 탓이지 네 탓은 아니야."


아버지가 먼저 양주병 뚜껑을 열고 병째 한 모금을 마셨다.


"마셔라."

"네"


그녀는 아버지의 손에서 양주병을 받아 들고 한 모금을 마셨다.

금세 목젖이 뜨끔하고 뱃속이 찌르르했다.


"우리끼리 얘기한다만 그놈들 짐작하는 데라도 있니?"

"없어요."


그녀는 고개를 들고 건너편 산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가을이었다.

추색이 완연한 산에 햇살이 고즈넉했다.


"경찰 수사도 믿을 게 못 되는 것 같다..."


아버지가 우울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만 내려가자꾸나."

"조금만 더 있다가..."

"네 어머니와 보영이가 기다리고 있을 거다. 네가 퇴원한다고 해서 집을 청소하라고 했다..."

"..."

"앞으로 어떻게 할 셈이냐?"

"당분간 쉬면서 생각해 봐야겠어요."

"그래"


아버지가 무겁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들이 공원묘지에서 내려온 것은 한 시간쯤 뒤의 일이었다.

보옥은 아버지를 따라 산에서 내려오며 몇 번이나 뒤를 돌아다보곤 했다.

남편과 딸이 묻혀 있는 공원묘지를 내려오는 것이 가슴이 저렸다.


백석에서 그녀의 집까지는 거의 두 시간이 소요되었다.

택시를 전세 내 집으로 돌아오면서 그녀는 내내 범인 생각에 몰두했다.

(도대체 그자들은 누구일까? 여자가 한 명 끼어 있는 것으로 봐서는 단순한 떼강도가 아니야...)


강도질을 하고 여자를 겁탈하면서 사진을 찍은 일이 수상했다.

게다가 사진을 서류 봉투에 넣어 대문 앞에 떨어뜨려 놓고도 금품을 요구하지 않는 것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내가 어쩌다가 그런 실수를 해서...)


그녀는 깊은 후회를 했다.

그날 밤 딸은 독서실에서 이미 돌아와 있었다.

그녀가 술에 취해 곯아떨어져 있는 남편의 위에 올라가 정사에 몰입해 있을 때였다.

딸은 열려 있는 대문으로 들어와 돌아왔다는 얘기를 그녀에게 하려다가 깜짝 놀랐다.

반쯤 열려 있는 안방에서 울음소리 같은 신음 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딸은 조심스럽게 방안을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얼굴이 화끈거리고 가슴이 뛰었다.


(엄마 아빠가...)


딸은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조심스럽게 2층의 제 방으로 돌아와 침대에 누웠으나, 입을 잔뜩 벌리고 신음 소리를 토해내는 그녀의 얼굴과 위아래 오르내리는 그녀의 허연 엉덩이만 자꾸만 눈에 어른거렸다.


복면을 쓴 사내들이 침입한 것은 30분쯤 지나서의 일이었다.

딸은 점점 사나워지고 있는 바람 소리 때문에 그들이 침입한 것도 전혀 몰랐고, 그녀가 딸을 데리러 독서실에 간 사실조차 몰랐었다.

딸은 사내들이 1층에서 남편을 꽁꽁 묶고 2층으로 올라왔을 때야 겨우 강도가 침입했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어린 딸로서는 아무 저항도 할 수 없었다.


딸은 그들에게 머리채가 잡혀서 안방으로 끌려 내려갔다. 그때 이미 남편은 사내들에게 각목으로 마구 얻어맞아 피투성이였다.

그들은 딸을 짓밟기 시작했다.

딸은 그들의 우악스러운 손에 의해 간단하게 스커트가 찢겨 나갔다.


그녀가 돌아온 것은 그때쯤의 일이었다.

그녀는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딸을 짓밟고 있는 사내들을 향해 달려갔으나 누군가에 의해 등짝을 얻어맞고 방바닥에 나뒹굴었다.

그것이 그녀가 기억하는 폭풍의 밤에 일어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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