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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미 여인의 정사 - 11장. 제 2의 살인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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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하얗게 내리고 있었다.

거리와 건물들이 잠깐 동안에 흰눈으로 하얗게 덮였다.

함박눈이었다.


보옥은 룸살롱 불야성의 입구가 저만치 보이자 잠시 걸음을 멈추고 호흡을 가다듬었다.

어떻게 된 일인지 이 며칠 불야성을 감시해 왔으나 망치도 나타나지 않았고 현애자도 연락이 끊어진 것이다.


이제는 그녀 스스로가 뛰어 들수밖에 없었다.

어차피 현애자의 도움을 받는 것은 한계가 있기 마련이었다.

그녀의 가정을 파탄에 빠뜨린 정체불명의 사내들과 불야성이 밀접한 관련이 있다면 그녀가 불야성에 출현하는 즉시 그들이 어떤 형태로든 접근해 올 것이다.


그녀는 그들을 유인해 내리라는 생각했다.

그녀는 불야성을 향해 일정한 걸음걸이로 걸어갔다.


"어서 오십시오."


불야성 입구에 다다르자 나비 넥타이를 맨 사내 하나가 허리를 굽신했다.

김군이라는 사내였다.


그녀는 김군에게 일별도 던지지 않고 안으로 들어갔다.


안에서 술을 마시던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그녀에게 쏠렸다.

안에는 조그만 홀이 있었고 룸으로 통하는 복도는 커튼으로 가려져 있었다.

홍은 한산했다.

그러나 룸에는 밴드소리와 호스테스들의 간드러진 교성이 희미하게 들렸다.


그녀는 스탠드 한쪽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혼자 오셨습니까?"


남자 바텐더가 정중하게 그녀를 향해 물었다.

스탠드에는 눈매가 싸늘하고 광대뼈가 툭 튀어나온 사내가 혼자 앉아 술을 마시다가 그녀를 힐끔거렸다.


망치였다.

보옥은 가슴이 두근거리고 뛰기 시작했다.


"룸으로 안내해 드릴까요?"

"여기도 좋아요. 술 한잔 마시고 갈 거니까..."


그녀는 익숙한 솜씨로 담배를 꺼내 물었다.

바텐더가 재빨리 고급 라이터를 켜서 그녀에게 불을 붙여 주었다.


"고마워요."


그녀는 담배 연기를 길게 내뿜고 미소를 지었다.

망치라는 자는 뒷문으로 출입하고 있는 것 같았다.


"술은 뭘로 하시겠습니까?"

"칵테일로 주세요."


"블랙 러쉬는 어떻습니까?"

"좋아요."


바텐더가 칵테일을 준비하는 동안 보옥은 자연스럽게 실내를 둘러 보았다.

망치가 바짝 긴장하여 그녀를 곁눈질로 살피고 있었다.


"어떻게 혼자 술을 드십니까?"


바텐더가 블랙 러쉬 한잔을 그녀 앞에 놓으며 말을 걸었다.


"혼자 오면 안 되나요? 시카고에선 늘 혼자 마셨어요."


보옥은 미소를 지으며 거짓말했다.


"그럼 교포이신가요?"

"아니요. 거기 대학에서 공부했어요."


"어쩐지 세련돼 보이신다 했습니다."

"그래요? 고마워요..."


"어디서 한번 뵌 분 같기도 하고..."

"어디서요?"


"글쎄요. 어딘지 잘 기억이 안 납니다."


바텐더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보옥을 새삼스럽게 살피는 척했다.

보옥은 일부러 바텐더를 향해 생글생글 웃어주었다.


"실은 저도 어디서 뵌 분 같아요."

"그래요?"


바텐더가 반색했다.

망치는 묵묵히 술만 마시고 있었다.


"혹시 거여동에 살지 않으세요.?"

"아니요."


바텐더가 살레살레 고개를 흔들었다.


"이상한데...거여동에서 한번 뵌 것 같은데..."

"다른 사람이겠죠."


바텐더가 사람 좋게 웃어 보였다.

보옥은 바텐더는 자신의 가정을 파탄에 빠뜨린 정체불명의 사내들과 관련이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이날 보옥은 밤 11시쯤 또 불야성을 찾아갔다.

그날도 눈은 어지럽게 내리고 있었다.


바텐더는 여전히 상냥하게 그녀를 접대했고, 망치도 스탠드 한쪽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서 그녀를 살폈다.

그리고 그날은 양마담이라는 여자도 공연히 홀을 들락거리며 그녀를 훔쳐보곤 했다.


"어디 사십니까?"

"거여동이요."


"좋은 동네군요."

"거여동을 잘 아세요?"


"아니요. 그저 얘기만 들었을 뿐입니다."


그것이 그날 보옥이 바텐더와 나눈 대화였다.

보옥은 사흘째 되는 날도 비슷한 시간에 불야성을 찾아갔다.


그날은 날씨가 몹시 추웠다.

이틀 동안 내린 눈이 녹지 않고 꽁꽁 얼어 시내가 온통 빙판길이었다.

보옥은 장충동의 3류 호텔에 방을 하나 잡아 놓았다.


"얘기 아빠는 뭘 하십니까?"

"죽었어요."


"그럼 얘기는?"

"얘기 아빠와 함께 죽었어요."


"교통사고를 당했군요."

"아네요. 둘이 자살했어요. 나도 함께 자살을 했었는데 김민우라는 학생 때문에 살아 있어요."


보옥은 조용히 말했다.

바텐더의 눈빛이 심하게 흔들렸으나 더 이상 보옥의 과거를 묻지 않았다.

망치는 그날 스탠드에 없었고 양마담이라는 여자만이 또 보옥을 주의 깊게 살피고 있었다.


(저 여자도 범인이 분명해!)


보옥은 그렇게 생각했다.

눈빛이 섬뜩하게 차가운 여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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