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야설

창녀를 위한 소나타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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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전화부스 안에서


거센 그 남자의 호흡과 내 호흡이 한데 뒤엉키고 있었다.

나는 내 마음속 깊은 곳에서 서서히 끓어오르고 있는 욕망의 존재를 인정하고야 말았다.

부모님이나 남편이 이 사실을 안다면 펄펄 뛰고도 남음이 있었지만, 내게는 의외의 수확이었고 미지의 세계를 향한 끝없는 열망으로 인식되었다.


그 남자가 자신의 딕을 바지 지퍼 사이로 꺼내 들고 내 스커트 속으로 밀어 넣는 상상을 하니 현기증이 일어날 것 같았다.

유리로 만든 성이 조금씩 깨어져 나갔다.

나를 지금까지 결박했던 보이지 않은 족쇄가 스르르 풀리고 있었다.


유리로 만든 성안에 살던, 피아노 줄 끝에 매달린 인형이 갑자기 자유로워졌다.

가느다란 실핏줄이 툭 하고 잘려 나가듯이 내 안에 있던 무언가가 소리 없이 잘리고 있었다.

하지만 거침없이 푸쉬를 파고들던 그 남자의 손이 주춤하고 있었다.

딕에서 느껴졌던 엄청난 열기도 조금씩 사그라들었다.

곧 남자가 내 몸에서 떨어져 나갈 것이라는 걸 나는 직감하고 있었다.

안타까움에 발을 구르고 싶었다.


남자의 숨소리는 점차 규칙적인 평온을 되찾고 있었다.

팽팽하게 부풀었던 딕은 더 이상 느껴지지 않았다.

남자의 손도 푸쉬를 떠났다.

미끈한 애액으로 촉촉해진 푸쉬가 남자의 손길을 기다리며 아우성을 치고 있었다.

나는 처음 느껴보는 당혹감에 진저리를 쳤다.


"이번 역에서 내릴 겁니다."


그 남자는 허스키한 목소리로 내 뒷덜미에 속삭였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건지 나는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나는 움직이지 않았다.

남자가 커다랗게 한숨을 쉬고 옷매무새를 바로잡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뜨겁게 달구어진 내 몸을 진정시켜야 했다.

무릎에서 힘이 빠져나갔다.


남자는 오랫동안을 내 뒷모습만 주시하다가 마침내 열차가 멈추고 문이 열리자 나가버렸다.

그 남자를 뒤따라 내리고 싶은 유혹을 참느라 나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그 남자의 얼굴을 보고 싶지 않았다.

이미 내가 내렸어야 할 역에서 한참 지나온 후였다.


온몸이 남자를 원하고 있었다.

다음 역까지 겨우 한 구역을 지나치면서도 얼이 빠진 여자처럼 안절부절 해하며 서성거렸다.

전철은 아까보다 훨씬 한가해 보였다.

많은 사람이 제각기 직장을 찾아 철새처럼 떠났기 때문이었다.



`그 남자도 가버렸어. 그것도 나를 쓰레기처럼 이 안에 내팽개쳐두고.`


서서히 열리는 성적 욕망을 제어하기란 힘에 겨운 일이었다.

그러기엔 나는 너무도 무지했고 나약하기 짝이 없는 여자였기 때문이었다.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뭉클한 것이 치밀어 오르고 있었다.

자동 출입문이 열리자마자 튀어 나가서 지하철역 안의 화장실을 찾았다.

스커트는 몇 개의 주름을 제외하곤 깨끗했다.


`나는 더럽혀졌어.`


하루 사이에 너무 많은 일이 일어났다.

여자와 키스를 했고 감미로운 전율을 느꼈으며 전철 안에서의 해괴한 행동은 또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그러나 거울 속에 비친 내 눈은 그게 아니라고 반발하고 있었다.


`나는 더럽혀진 게 아니야! 어째서 그렇게 생각되어야 하지? 나는 창녀가 아니야.`


핸드백 속에 준비해온 티슈 몇 장을 스커트 밑으로 가져갔다.


`여기에 그 남자의 손이.`


티슈로 지긋이 눌러대며 그 남자가 남긴 흔적을 음미했다.

그 손길을 영원히 잊을 수 없을 것 같았다.

이래서 여자들이 자위를 하나 봐.


씁쓸한 쾌감이 전신을 훑었다.

다른 사람들의 화장실을 들어서는 발걸음 소리를 들으며 나는 천천히 그곳을 빠져나왔다.

허탈한 감정이 떠나질 않고 있었다.


`이제 나는 어떻게 해야 하지.`


친정집엘 가겠다는 생각은 백지장처럼 하얗게 지워진 지 오래였다.

완고한 표정의 어머니를 마주 대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나는 무작정 공중전화 부스로 가서 전화 카드를 밀어 넣었다.

아무도 없는 집으로 돌아가기는 죽기보다 싫었다.


따르르르...


신호음이 갔다.


`내가 지금 누구에게 전화를 걸고 있는 거지?`


나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기억을 되살리려고 했지만, 전화선 건너편에서는 벌써 수화기를 집어 들고 있었다.


"네."


짤막하게 울리는 쾌활한 목소리.



나는 화들짝 놀라서 수화기를 내려버렸다.

나도 모르게 미선의 전화번호를 누른 모양이었다.

그녀의 연락처를 적은 메모지는 침실의 탁자 위에 있는데 언제 그렇게 또렷이 외웠는지 모를 일이었다.

못된 짓을 하다가 들킨 아이처럼 가슴이 심하게 두근거렸다.


내 뒤에 선 아주머니가 초조하게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겸연쩍은 기분이 들어서 나는 다시 수화기를 들고 남편의 회사로 전화를 걸었다.


남편의 일을 돕는 미스 민이 전화를 받지 않는다.

아마 비서실을 비우고 다른 볼일을 보러 간 거겠지.


미스 민을 거치지 않은 전화는 절대로 남편이 먼저 받질 않았다.

핸드폰이나 호출기로 연락할까 하다가 아주머니의 표정을 보고는 그냥 양보하기로 했다.


그 아주머니는 지금 당장 전화를 걸지 못하면 지구가 멸망해버릴 것 같은 절박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내가 카드를 뽑아가기도 전에 아주머니는 나를 밀치고 수화기를 낚아채듯 받아서 들었다.

얄미운 생각이 들었지만 그대로 자리를 비켜줄 수밖에 없었다.


'그래. 남편에게 가자.'


어차피 별다르게 갈 만한 곳이 없었다.

더구나 남편의 회사는 몇 블록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지 않은가.


남편을 만나 조금 전 내가 느꼈던 새로운 감흥에 대해 말해주고 싶었다.

아니, 몸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몸은 차갑게 식어 있지만 남편이 내게 키스해 준다면 다시 거짓말처럼 활활 타오를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긍정적인 쪽으로 생각하니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택시를 타고 남편의 회사에 도착했을 때는 콧노래까지 흥얼거리고 있었다.


남편을 위해 일하는 직원들이 한없이 고맙게만 느껴졌다.

현관에 있던 경비가 약간 고개를 숙여 아는 체를 했다.


엘리베이터에 몸을 실으면서도 내 머릿속은 다시는 미선에게 전화 걸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맨 처음 짜릿함을 맛보여준 건 미선이었지만, 전철 안에서의 그 남자한테서도 얼마든지 흥분을 느꼈으니까.

굳이 미선의 힘을 빌리지 않아도 나 혼자 스스로 깨우치면 되는 거야.

다만 그것이 빠르고 늦고의 작은 차이는 있겠지.

나는 나만의 방식으로 그것을 과감하게 받아들일 거야.

그게 남편을 위해서나 나를 위해서나 올바른 일이야.


혹시 내 반응을 보고 남편이 실망하진 않을까.

그이의 손길이 전철의 그 남자와는 다르게 느껴지면 어떡하지.

나를 창녀 보듯 하는 건 아닐까.

그래도 내가 아파트 옥상에서 뛰어내리거나 미쳐버릴 걱정을 하지 않는 게 어디야.

이제 그런 생각 따위는 다신 하지 않겠어.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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