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야설

보고 싶다 - 3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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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부 미련 속으로….



나는 로비로 내려가면서 제대로 옷을 차려입었는지 망설이고 있었다. 사무적인 복장만을 챙겨오고, 줄곧 호텔에 처박혀 있을 생각에 별로 준비해 오지 못한 편의복이 그렇게 아쉬울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나는 로비에 있을 그녀를 찾아 발걸음을 빠르게 옮겨갔다.


그녀가 나를 보며 먼저 손을 든다. 언제 갈아입었는지 공항에서 볼 때와 다른 그녀의 옷차림…. 



“하나도 안 변한 거 같아요.”


“그래? 괜히 놀리는 거지? 남편은?”


“티켓을 바꾸러 갔죠.”


“티켓은 왜?” “장기 공연한다고 되어 있는데, 굳이 만날 사람도 있는 상황에 볼 필요 있겠느냐고요. 참 좋은 사람이에요.”


“그래도 그렇지. 내가 뭐 대단한 사람이라고….”


“아니에요. 남편도 수천 번이 넘도록 들어온 내 얘기 때문인지, 아까 호텔에서 같이 샤워하는데, 남처럼 느껴지지 않는다고 하더라고요. 이상하죠? 만난 일도 없는데….”


“그렇긴 하네. 그럼, 저녁 스케줄은 어떻게 하려고….”


“남편은 내일 아침 비행기로 다시 돌아가기로 했어요. 저더러 좋은 시간 같이 보내다 오라고까지 했거든요.”


“기왕이면 같이 있지. 괜히 나 때문에 불편해진 거나 아닌지 모르겠다.” 


“아니에요. 남편은 그런 일들에 매우 관대한 편이에요. 부부의 틀을 깨지 않는 상황에서 서로가 즐겁고 행복한 시간을 스스로 가질 수 있는 자유가 이를테면, 해로할 수 있는 지름길이라고 믿는 사람이에요. 한국 같으면 있을 수도 없는 일이겠지만, 제가 사는 곳에서 저랑 남편은 Swinger Club(부부 교환 모임)에 같이 들어 있기도 해요. 같이 가서 즐기기도 하지만, 때로는 각자 혼자 가서 싱글의 기쁨을 맛보면서 밤을 새우고 돌아오기도 해요. 그런 이벤트 후에는 왠지 예전보다 서로를 아끼고 가까이하고 싶은 생각이 더 치미는 거 있죠? 이해가 가요?” 


나는 대답 없이 고개만 끄덕이고 있었다. 


스와핑이나 삼섬이라 하는 것들이 사회의 지탄을 받아오는 마당에, 프리섹스를 구가하면서도 부부로서 아무런 문제 없이 살아간다는 사실에 나는 괜한 부아까지 치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럼, 진짜, 이렇게 같이 있어도 돼?”


나는 의심 많은 인간이었다. 아니, 소심하다고 해야 할지…



“제가 오늘 좋은 곳으로 안내할게요. 뉴욕에 있는 Swinger 부부가 소개한 곳인데 꽤 괜찮아요. 한국에도 있죠? 유람선….”그녀와 나는 저녁이 어스름할 때까지 근처의 스타벅스 커피점에서 마주 앉아 이 얘기, 저 얘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애는 누가 봐주는 사람이 있어?”


“그럼요. 돈만 있으면 한국 사람 같지는 않아도 믿고 맡길 수 있거든요. 내년이면 벌써 킨더 가든에 들어갈 나인데….”


벌써 유치원에 갈 나이…. 세월이 무심하게 빠르다고 생각했다.



그녀가 운전하는 차를 타면서 렌터카지만, 감회가 새로운 것은 무슨 이유였을까?



그녀는 차를 몰아 유람선이 출발한다는 선착장으로 가는 도중에 가방을 열어봐 달라고 했다.


가방 속에는 여남은 개의 CD가 들어있었고, 그녀는 붉은 색깔의 CD를 틀어봐 달라고 부탁했다.


청아한 반주로 귓가를 때리는 그 음악…. 그녀가 좋아하던 그 노래였다. 



“아직도 이걸 듣고 다녀?”


“그럼요. 저에게는 소중한 추억이 깃든 노랜데, 버릴 수가 있어야지요.”


길거리의 현란한 네온사인을 뒤로하며, 곧바로 서 있는 건물이 무너져 내릴 것처럼 하늘을 덮고 있는 빌딩 숲 사이로 나는 음악을 들으며 창밖을 보고 있었다.


수많은 사람들과 차들로 뒤덮여 있었지만, 어쩐지 스스로 군중 속의 고독을 실감하는 분위기가 싫지는 않았다. 



“외롭거나, 한국에 다시 가고 싶은 마음이 들 때는 없어?”


“독일에 있을 때는 종종 그랬죠. 그러다 슈나이더를 만나고, 그이가 너무 잘해 줘서 이제까지 나라를 바꿔 가면서 살았는데도 불구하고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들지는 않더라고요.


남편도 신기해하긴 해요. 자기는 고향에서 먹던 호밀빵이랑, 흑맥주, 그리고 거친 메쉬포테이토(삶은 감자를 으깬 요리)가 간절할 때가 있는데 저보고는 그런 때가 없느냐고 하대요. 


뭐, 꼭 다 잊은 사람처럼 사는 건 아니에요. 인터넷으로 한국의 드라마를 볼 때, 나오는 라면 먹는 장면이나 자장면…. 그런 거 보면서 한번 가 봐도 좋겠다는 생각을 한 번도 안 했다면 거짓말 일거에요.”


그녀가 잠시 멈추어 선 교차로에서 머리를 목뒤로 쓸어 넘겼다. 하얗게 드러나는 그녀의 길고 여린 그 그림자들….


멀리 보이는 선착장의 주차장이 보이는 지점에서 그녀는 뻘쭘히 앉아 있는 나의 손을 지그시 쥐어 보았다. 차가 정차하고, 나에게 그 넓은 풍경에 혹시나 차를 찾기 힘들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마저도 들게 하는 곳이었다. 



“많이 보고 싶었어요….” 


“………” 


나는 대답을 하질 못했다.


어둑해진 차 안에서 그녀는 예전과 다름없이 과감한 돌진으로, 옆자리에서 안전벨트도 풀지 못한 채 결박당하는 것 같은 자세로 그녀의 입맞춤을 받아들이고 있는 나를 한없이 입술로 더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배우자가 허락한 시간이라는 해방감이 안겨다 주는 안락함이랄까? 나와 그녀는, 그 용이한 자유로움에 마구 빠져들어 가고 있었다.



외국에 살아서일까? 그녀는 입술이 닿는 것만으로도 감흥이 오를 대로 오를 수 있었지만, 처음부터 타액이 흥건한 혀를 내 입속으로 밀고 들어왔다.


그녀는 차의 시동을 끄고 벨트를 푼 뒤에 나의 가슴 쪽으로 상반신을 완전히 기울여 혀를 내 입속에 밀어 넣으면서 한 손으로는 내 몸을 더듬기 시작했다.



떨리는 그 손끝의 감촉은 여전했다. 그녀는 밖에서 누가 볼 수도 있는 상황을 전혀 의식하지 않고 있었으나, 나는 아무래도 그런 개활지에서의 진한 애정 공세에는 별로 익숙해 있지 않은 고로, 자세가 단단히 굳어 있었다.


그런 나의 심정을 눈치챘는지, 그녀가 황급히 내게서 몸을 떼고 말았다.



“아직도 조심하시는 건 여전하시네…. 깔깔깔…. 외국에서는 길거리에서 키스를 하건 말건, 주시하거나, 주목하는 사람이 없어요. 너무 긴장하시네?”


“넌 어떻고?”


“저도 맨 처음에는 한국 사람티를 있는 대로 다 내고 살았죠. 그렇지만, 남편의 리드로 이제는 웬만한 문제에 대해서는 가시를 세우진 않아요. 어서 서두르죠. 8시가 아마 마지막 배일 거예요.”


그녀가 앞장서서 나를 인도했다. 



유람선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격이 떨어지는 감도 없질 않았지만, 배는 그런대로 있어 줄 만 했다.


아직은 차가운 바람이 밀쳐 들어오는 갑판에서 나와 그녀는 검게 넘실거리는 강 물결을 내려다보면서 난간에 기대고 있었다. 저 멀리에는 아직도 일들을 하는지, 강 주변의 건물들에는 불들이 켜져 있었고, 어떤 건물은 어떤 패턴을 만들면서 실내의 불이 켜져 있었다. 한강 주변에 여의도를 제외하고는 모두 다닥다닥 붙은 아파트 촌만 보아오던 풍경과는 사뭇 다른 감이었다.


그녀는 나의 어깨에 살포시 고개를 기대어 오고, 한 팔은 이미 나의 팔짱을 끼워 도망가지 못하게 하려는 것처럼 힘을 주고 있었는데….


“인연은 어쩔 수 없나 봐요. 이렇게 머나먼 타국에서, 그것도 바늘귀 같은 타이밍에 만나게 된다니….”


“그러게나 말이야. 근데 춥지 않아? 아까 보니깐 머리도 다 안 말리고 나온 거 같던데….” 


“마음이 급해서 그럴 수가 있어야지요. 호텔에서 정신없이 옷도 벗은 채로 거울을 보면서 머리만 털고 있으니, 남편이 뒤에 붙어 서서 마구 들이대지 않겠어요? 시간도 없는데…. 짜증도 났지만, 나를 이렇게 보내준다는 그 고마움에 세면대에 기대서는 그냥 뒤로 엉덩이를 사정없이 밀어줬죠. 남편은 그 질투 비슷한 느낌이 너무 좋다나 봐요. 자신이 사랑하고 있는 상대가 다른 사람에게 넋을 잃고 있다는 그 상황…. 그로 인해 불같이 열정이 솟구친대요. 게다가 그 이후에는 언제나 자신을 향한 넘치는 애정을 담고서 돌아올 거라는 기대감이 자신을 언제나 건강하게 만든다고 해요. 참 별나죠? 손 좀 줘 봐요….”


나는 멋모르고 팔짱을 낀 팔과 반대쪽 손을 내밀었다.



그녀는 아무런 거침없이 그 손을 자신의 바지춤 안으로 밀어 넣었다. 미끈하게 만져지는 그녀의 보지 살…. 예전에 보았던 그 털은 이미 간데없고, 매일 면도를 하는지 까슬까슬한 감촉만이 손끝에 닿았다.



“놀랍죠? 슈나이더의 정액이에요. 기어이 자신의 스펌(정액)을 제 보지에 담고 가라고 하요. 아마 모든 벌어질 일들을 내다보고 있지 싶어요. 냄새 좀 맡아봐요….”


나는 얼결에 그녀의 바지춤에서 빼낸 손가락을 코에 대 보았다. 화한 비누 냄새와 더불어, 어둠에도 비쳐 보이는 그 번들거리는 손가락…. 그것은 남편의 정액에서 풍기는 독특한 밤꽃 내음이라기보다는 나와 그녀의 사이에 지금도 놓여있는 미련의 여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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